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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사이공이 오바마를 만난다면

Posted May. 24, 2016 07:41,   

Updated May. 24, 2016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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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의 베트남 처녀 킴과 미군 병사 크리스는 하룻밤을 보낸 뒤 서로 다른 세계에 와서 만난 것이 기적이라고 노래한다. “그댄 햇살/난 달빛/하늘을 함께 나눠 갖네….” 베트남전쟁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미스 사이공’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1975년 4월, 사이공(현 호찌민) 함락 때 실물 크기 헬리콥터가 등장해 미군을 철수시키는 장면도 장관이지만 베트남인이 사는 곳을 사창가로, 조국을 위해 싸우는 베트콩 청년을 공포의 대상으로, 미군을 구원자로 묘사했다는 비판도 없지 않았다.

 ▷호찌민 시 베트남 전쟁박물관에는 미군과 싸울 때 쓴 전투기와 탱크는 물론 좁은 감옥에 갇힌 사람 모형 위로 살아 있는 박쥐들을 풀어놓아 반미 정서와 공포감을 극대화한다. 베트남이 공산화된 지 20년 만인 1995년 미국과 수교를 하자 국제사회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며 충격에 빠졌다. 어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베트남을 찾았다. “2000년 미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인 빌 클린턴 대통령 방문만큼 극적이지는 않지만 훨씬 야심 차다”는 것이 뉴욕타임스 분석이다. 양국 모두 ‘중국 견제’라는 현실적 계산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사이 줄타기 외교를 해 온 베트남은 요즘 중국과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때문에 미국 쪽으로 기우는 모습이다. 지난해 7월 공산당 서기장이 처음 미국을 찾은 데 이어 올 초 공산당 전당대회에서도 친미파 부상이 두드러졌다. 7월 국회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비준 동의안이 통과되면 베트남은 1호 비준국이 된다. 

 ▷미얀마는 물론 이란 쿠바까지 문을 연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베트남 일본 방문으로 ‘부도덕한 전쟁’으로 평가받는 미-베트남전쟁과 태평양전쟁의 상흔을 치유하는 ‘오바마표 외교’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을 태세다. 어제 정상회담에서는 10년 전쟁을 치렀던 과거 적국에 대해 살상무기 수출금지까지 풀었다. 40여 년 전 미국에 있는 아빠에게 아들을 보낸 뒤 자살로 생을 마감한 미스 사이공. 만일 오바마를 만난다면 이것도 기적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허 문 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