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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통화스와프 자금을 무역결제 활용 가능한 것부터 한발씩

한중 통화스와프 자금을 무역결제 활용 가능한 것부터 한발씩

Posted October. 12, 2012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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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폐를 어디에 쓸 수 있을까?

2009년 10월, 한국 정부로부터 통화스와프(외화유동성 위기 때 통화를 맞교환하는 것) 제의를 받은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재무부는 고민에 빠졌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이름 모를 동양인의 초상화에 불과한 원화를 기축통화인 달러화로 조건 없이 교환해 달라는 게 말이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신흥국이 위기에 빠져 선진국 채권을 내다팔면 신흥국의 금융 불안이 선진국의 위기를 키우는 악순환에 직면할 것이라는 논리로 미국을 설득했고 결국 통화스와프 체결에 성공했다.

하지만 한국과 통화스와프를 맺은 나라들이 위기 때 자국화폐와 바꾼 원화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한국은 아직 답을 제공하지 못했다. 원화가 세계시장에서 통용되지 않는 한 한국은 국제금융 위기 때마다 우리가 곤란해지면 당신들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란 다소 궁박한 논리로 통화스와프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결국 소규모 개방경제(small open economy)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원화의 위상을 적어도 한국 경제규모에 걸맞은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원화 국제화가 먼 길이긴 하지만 지금부터 실현가능한 과제를 차근차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정치적 수사로 남용된 원화 국제화

과거 역대 정부는 여러 차례 원화 국제화를 경제정책의 주요 기치로 내세웠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하자마자 2011년까지 한국을 홍콩, 싱가포르와 맞먹는 3대 아시아 국제금융시장으로 육성하겠다며 원화 국제화를 추진했고, 노무현 정부는 2006년 원화 국제화를 진전시킬 로드맵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두 정부 모두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국내총생산(GDP) 15위, 무역규모 7위의 한국이지만 원화는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세계 외환시장에서 원화의 거래비중은 전체 200%(거래에 두 개의 통화가 사용되므로 비중의 총합은 200%) 중 1.5%에 불과하다. 호주 달러(7.6%)는 물론이고 스웨덴 크로나(2.2%), 뉴질랜드 달러(1.6%)보다도 적다.

무역에서도 원화는 찬밥 신세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46월) 기준 전체 무역거래에서 원화 결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수출 2.4%, 수입 3.4%였다. 그나마 상당 부분은 미국유럽연합(EU)의 대()이란 제재에 따른 이란산 원유 수입대금을 원화로 결제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경상수지 흑자를 통한 외환보유액 확대가 정부의 지상과제였기 때문에 수출기업에 원화 결제를 권할 이유가 없었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은 5년 단임 정부가 임기 안에 원화 국제화의 성과를 내려고 한 것이 실패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실현 가능한 정책부터 차근차근

이명박 정부 역시 2008년 100대 국정 과제 중 하나로 원화의 국제화 방안을 내세웠으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추진 속도가 떨어졌다.

하지만 올해 원화 국제화의 의미 있는 물꼬가 트였다. 한중 통화스와프 자금을 무역결제에 활용하는 방안을 중국과 협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통화스와프를 통해 중국 런민()은행이 보유할 원화를 중국기업이 무역자금으로 대출하고 한국 기업이 이를 받아주면 원화 무역결제가 가능해진다. 위기 때 긴급하게 외화를 들여오는 보험용으로 맺은 통화스와프를 원화 국제화의 추진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게 정부의 전략이다. 정부는 우선 국내 기업 본사와 중국 지사 간 거래가 많은 기업을 원화결제 선도기업으로 발굴하고 이들이 원화결제를 할 경우 여러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통화스와프를 활용한 무역거래 원화결제를 원화 국제화의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하고 있다. 무역결제로 중국에서 원화가 거래되기 시작하면 이 돈을 한국의 주식, 채권 등에 대한 투자로 이끌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원화 무역결제 대상국을 동남아시아 국가 등으로 확대하는 방식의 점진적 원화 국제화가 가능해진다. 역외채권 규제 철폐를 통한 자본시장 자유화로 통화 국제화에 성공한 호주, 싱가포르 등의 사례도 한국이 참조할 만하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칫 원화 국제화를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통화 국제화에 따른 장점보다 단기적 부작용이 크게 나타날 수 있다며 지금은 원화의 무역결제 비중을 높여 기업들의 환위험을 줄이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궁극적으로는 원화의 국제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 견실한 성장을 바탕으로 한국의 경제시스템이 외부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내성을 갖춰야 원화 국제화의 필수조건인 해외 수요가 커지기 때문이다.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은 세계적 경기침체 속에서 더욱 인정받고 있는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최소 10년 이상 유지하면서 물가 상승 압력, 대외충격에 대한 취약성, 지정학적 리스크 등을 극복한다면 원화 국제화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훈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