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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통역에 성폭행피해자 합의서 서명 (일)

엉터리 통역에 성폭행피해자 합의서 서명 (일)

Posted April. 16, 201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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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피해에 합의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이라고 통역해줘요.(경찰)

합의서를 써 주고 합의금을 받아도 처벌에는 영향이 없다고 하네요.(통역)

엉터리 통역 때문에 성폭행 피의자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을 뻔했지만 법원이 피해자 의사를 정확히 파악해 실형을 선고했다.

서울 서부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김종호)는 한국어를 못하는 피해자가 통역 요원의 잘못된 통역을 믿고 서명한 합의서를 근거로 형 감경을 주장한 성폭행 피의자 고모 씨(30)에게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와 경찰에 따르면 4세 때 해외로 입양된 뒤 친부모를 찾기 위해 귀국했다 지난해 10월 성폭행 당한 황모 씨(32여)는 경찰 조사에서 줄곧 피의자를 처벌해 달라고 했다. 프랑스어밖에 못하는 황 씨에게 경찰이 민간 통역 요원을 붙여줬다. 통역 요원은 해당 언어 사용 국가 거주 경험 등 일정 요건을 갖춰 경찰청에 등록한 뒤 자원봉사 형식으로 활동한다.

고 씨는 합의를 요구했다. 그러자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해 원만히 합의했으므로 차후 이 일에 대해서는 어떠한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합의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통역 요원에게 보여줬다. 법률상 합의 내용도 설명한 뒤 황 씨 의사를 물었다.

하지만 통역 요원도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외국으로 입양됐다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한국어로는 일상 대화만 가능했다. 법률용어나 한국어 독해에 서툴렀던 통역 요원은 합의서를 써 주고 합의금을 받아도 처벌에는 영향이 없다고 잘못 설명했다. 이 설명을 들은 황 씨는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합의는 했지만 특수강간죄가 적용된 고 씨는 재판을 받게 됐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합의서를 근거로 600만 원에 피해자가 합의했으니 법에 따라 형량을 줄여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자는 재판과 경찰조사에서 엄벌을 원한다고 한 점으로 미뤄 합의서는 잘못된 통역으로 인해 작성한 것으로 인정된다며 고 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정확한 통역을 위해서는 한 명의 통역사가 아닌 복수 통역인을 통한 교차 확인, 대사관이나 대학과의 협력을 통한 인력 확보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성민 박승헌 min@donga.com hpar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