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US오픈 우승 유소연

11일 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US오픈에서 우승자를 가리는 연장전에 오른 유소연(21)과 서희경(25)을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국민이 가슴 뿌듯했을 것이다. 두 선수는 1998년 이 대회에서 맨발의 투혼으로 18홀 연장 대접전 끝에 우승해 외환위기에 지친 국민에게 희망을 선사한 박세리(34) 키즈다. 1998년 박세리를 시작으로 한국 선수가 US오픈을 제패한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미국의 국가 타이틀이 걸린 대회에서 14년 동안 한국 선수가 5번이나 우승했으니 미국에서 열린 한국오픈이란 말도 나올 만하다.

골프의 묘미는 경쟁의 절정을 보여주는 연장전이다. 대부분의 골프 대회 연장전은 한 홀씩 대결해 곧바로 승패를 가리는 서든데스(sudden death) 방식이다. 급사()라는 의미가 말해주듯 선수들은 극도의 긴장을 느낄 수밖에 없다. US오픈 연장전은 과거 18홀 대결에서 2007년부터 마지막 3개 홀 점수를 합산해 승부를 가리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서든데스보다 부담은 덜하겠지만 선수 각자가 느끼는 긴장감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승패는 연장 두 번째 대결인 17번 홀(파5)에서 갈렸다. 서희경은 티샷한 볼이 페어웨이 벙커에 빠져 4번째 샷으로 공을 그린에 올려 보기를 기록했다. 유소연은 시종 침착한 샷과 퍼팅으로 버디를 잡아 2타 차로 사실상 승리를 굳혔다. 서희경은 4라운드 때도 17번 홀에서 짧은 파 퍼팅을 놓쳐 보기를 하는 불운을 겪었다. 반면 유소연은 마지막 날 대회 18번 홀(파4)에서 버디를 낚아 연장전을 성사시켰고 연장전 두 번째와 세 번째 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아내 끝내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골프에서 먼저 승기()를 잡은 선수가 연장전에서 패하는 경우는 흔하다. 이번에도 승기는 서희경이 먼저 잡았지만 결국 놓쳤다. 장갑을 벗어봐야 결과를 아는 게 골프라지만 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평창 겨울올림픽도 두 번이나 1차 표 대결에서 이기고 연장전인 2차 표 대결에서 진 적이 있다. 정치나 경제의 영역에서도 다반사로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치열함과 반전이 경쟁의 묘미를 더하기도 한다. 어느 분야든 최강자는 박수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

이 진 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