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본의 위기대처에서 배우고 조용히 돕자

일본 미야기 현 기센누마 시립보육원 교사는 무시무시한 쓰나미(지진해일)가 몰려오자 5세 미만 영유아 67명을 데리고 인근에 있는 3층짜리 공민관(마을회관)으로 갔다. 2층까지 물이 차오르자 교사는 아이들을 데리고 옥상으로 피신했다. 교사는 검은 연기와 기름 냄새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게 되자 아이들에게 찢은 커튼을 뒤집어쓰도록했다. 이틀째 추위와 배고픔에 떠는 아이들에게 내일 틀림없이 구조될 수 있다고 희망을 불어넣으며 버티다가 자위대 헬기에 전원이 구조됐다.

희생자가 무려 수만 명에 이르는 지진과 쓰나미의 대재앙 속에서도 일본인들의 차분하고 질서 있는 대응에 세계인이 놀라고 있다. 대피소와 쇼핑센터, 주유소, 지하철역에서 그들은 불평 한 마디 없이 몇 시간씩 줄을 선다. 대피소에서는 음식을 다른 사람에게 먼저 먹으라고 양보하는 인정과 배려가 넘친다.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중단으로 전력이 부족해지자 도쿄 등 지진피해가 덜한 지역에서는 주민이 전기 사용을 줄이고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오후 6시 전에 음식조리를 끝내자는 절전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최악의 재앙 앞에서 인내심과 냉정을 잃지 않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경탄으로 다가온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의 시민의식은 인류의 정신이 진화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찬사를 보냈다. 일본인들의 위기 대응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환태평양 지진대에 위치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지진과 쓰나미의 위험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하지만 우리에게는 북한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오늘 오후 2시 북한의 장사정포 공격으로 서울의 주요 시설이 파괴되고 전투기가 공습하는 상황을 가정해 민방위훈련이 실시된다. 강원 경북 울산 등 일부 동해안 지역에서는 지진 및 쓰나미 대비훈련을 한다. 5월 4일 민방위훈련 때는 전국에서 지진대비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우리는 1975년 민방위기본법을 제정해 36년 동안 민방위훈련을 실시했지만 아직도 형식에 흐르는 감이 있다. 국민 각자가 실제 상황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민방위훈련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과제다. 이번에 보여준 일본인들의 저력은 높은 시민의식과 더불어 평소 철저한 지진대비 훈련 덕분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웃국가가 겪는 사상 최대의 재난을 못 본척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구조와 피해 복구를 돕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무엇이 실제로 도움이 될 것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선진국 국민의 자존심을 충분히 배려하면서 조용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공명심과 경쟁의식이 앞선 나머지 호들갑을 떨다가 도움의 의미가 퇴색하지 않도록 유념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