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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트럭행상하고 손에 쥔 건 달랑 1만원

온종일 트럭행상하고 손에 쥔 건 달랑 1만원

Posted May. 29, 200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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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급등, 물가상승, 내수경기 악화, 고용불안 등 4대 악재()가 불거지면서 한국 사회 곳곳에서 서민들이 한계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물가가 급등하면서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반면 경기가 내리막길을 타고 일자리가 불안해지면서 손에 쥐는 돈은 줄어 살림살이가 적자로 돌아선 서민가계가 늘어나고 있다. 인터뷰에 응한 서민들은 하루하루 버티기가 너무 힘이 들다며 도대체 경기는 언제나 좋아지냐고 되물었다. 서민들의 고단한 삶의 현장을 들여다봤다.

운전대 놓을지 심각하게 고민중

27일 오전 9시 반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농협 가락공판장. 트럭행상 이효열(38) 씨는 3kg짜리 수박 20개를 1t 트럭 뒤에 옮겨 실었다. 이 씨는 이 수박을 3700원에 사서 5000원에 판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1만 원 짜리 67kg 수박이 많이 나갔는데 요즘엔 손님들 지갑이 홀쭉해서인지 5000원짜리가 많이 팔려요.

기자가 동행한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1시 반까지 이 씨는 트럭을 몰고 서울 광진구, 성동구, 동대문구를 이동하며 수박 10만 원어치를 팔았다. 그 동안 이 씨는 1만5000원어치의 기름을 썼다.

그는 한나절 동안 기름값, 점심 값을 빼면 딱 1만 원을 벌었다. 그나마 2시간 동안 하나도 못 판 어제보다는 낫다며 서민이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걸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들은 아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7일 경기 평택시 평택항에서 만난 화물차운전자 정은수(46) 씨는 오전에 남양주시까지 다녀오면서 운송비로 21만4000원을 받았는데 기름값 18만4000원, 고속도로통행료 1만9000원을 제하니 달랑 1만1000원 남더라며 운전대를 놓을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있던 다른 운전자는 기름값이 비싸다보니 등유와 경유를 절반씩 넣어 차를 몰고 있다며 6개월 정도 등유를 섞어 쓰면 엔진을 못 쓰게 된다던데 그래도 기름값 아껴 엔진 바꾸는 게 타산이 맞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달 들어 하루 밖에 일하지 못했어요

27일 오전 5시.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사거리에는 400여 명의 일용직 근로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승합차가 다가와 정차하자 일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들었지만 몇 사람을 태우고는 금세 떠나버렸다. 철근, 기계 기술자들이 모이는 남구로역 5번 출구에서 담배를 피우던 정모(52) 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 달에 20일은 일했는데 요즘에는 34일 일하기도 힘들다며 인력시장에 나온 사람 10명 중 1명도 일거리를 얻기 힘들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김모(59) 씨도 30년 넘게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요즘처럼 일거리가 없는 것은 처음이라며 이번 달에는 딱 하루 일한 게 전부라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건설경기 부진 등으로 임시 일용직 취업자 수는 올해 1분기(13월)에 12만3000명이나 줄었다.

생활비 빠듯 학원비-외식 줄여

난방 연료비, 수도 전기요금 등 줄이기 어려운 상품이나 서비스의 물가가 오른 반면 소득은 늘지 않아 저소득층의 생활은 더 빠듯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분기 소득 하위 20% 가구의 적자액은 44만4000원으로 지난해 4분기(1012월)보다 53% 늘었다.

인천 부평구에 사는 주부 김은숙(62여) 씨는 지난해 이맘 때 대형할인점에서 마늘 한 개와 신라면 한 봉지 가격이 450원이었는데 지금은 550원이라며 작년 가을부터 백화점에 발길을 끊고 반드시 전단지에 실린 할인 쿠폰이 있는 먹거리만 골라서 사지만 저축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듯하다고 말했다.

송파구에 사는 주부 신모(48) 씨는 학원비가 10% 이상 올랐는데 학원을 안 보낼 수는 없어서 외식 횟수를 한 달에 4회에서 2회로 줄였다고 말했다.

경기가 안 좋은데다 조류인플루엔자(AI), 광우병 파동 까지 겹치자 대도시 근교 음식점에도 발길이 끊겼다. 경기 의왕시에서 오리와 닭고기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원보(50) 씨는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며 성수기가 다가오는데 비수기인 겨울 만큼도 매출이 안 나온다고 한숨을 쉬었다.

28일 서울 서초구 서초3동 대한법률구조공단 본부에서 만난 강모(60여) 씨는 4년 전 보증을 잘못 서 집과 가게를 잃고 그동안 신용카드 대출로 생활을 해왔는데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게 됐다며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개인파산을 신청하러 왔다고 하소연했다.

강 씨는 일자리를 못 찾아 월세도 못 내고 있다며 얼마 전에는 도시가스까지 끊겨 밥도 제대로 못 해먹고 있다고 울먹였다.



장원재 정기선 peacechaos@donga.com ks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