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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와 자식빼곤 다 바꾼 21년 글로벌 기업 이끌어

마누라와 자식빼곤 다 바꾼 21년 글로벌 기업 이끌어

Posted April. 23, 2008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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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우리의 창업주와 선배들이 어떤 시련과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오늘의 자랑스러운 삼성을 이룩하셨듯이 본인은 젊음의 패기와 진취의 기상을 바탕으로 제2의 창업에 나서겠습니다.(1987년 12월 1일 삼성그룹 회장 취임식)

삼성가족 여러분, 20년 전 저는 삼성이 초일류 기업으로 인정받는 날, 모든 영광과 결실은 여러분의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어 정말 미안합니다.(2008년 4월 22일 기자회견)

1987년 부친인 고 이병철 창업주의 타계로 45세의 나이로 삼성그룹 총수가 된 이건희 회장이 결국 삼성 비자금 의혹 특별검사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비자금 사건을 둘러싼 논란과는 별도로 이 회장이 이끈 21년 사이 삼성그룹은 한국의 간판기업으로 우뚝 섰다. 특히 주력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세계 반도체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최고 수준의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이와 함께 신()경영 샌드위치론 천재경영 창조경영 등 이 회장이 던진 화두()는 경제계는 물론이고 한국 사회 전반에 변화와 혁신의 자극제가 됐다.

21년간 삼성그룹 빅뱅

이 회장은 취임 직후 자율경영과 기술 중시, 인간 존중을 축으로 하는 제2창업을 선언했다. 또 21세기 초일류기업 달성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조() 단위 순이익 실현을 약속했다.

이 약속은 대부분 지켜졌다. 반도체와 초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LCD), 휴대전화기, 모니터 등 세계 1위 제품을 줄줄이 탄생시켰다. 삼성의 브랜드 가치도 지난해 세계 최대 브랜드컨설팅회사인 인터브랜드의 평가에서 169억 달러로 세계 21위를 차지했다.

특히 2002년에는 시가총액에서, 2005년에는 브랜드 가치에서 난공불락처럼 여겨지던 일본의 소니를 앞지르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 회장 취임 첫해인 1987년 17조 원이었던 그룹 연간 매출액은 2006년 152조 원으로 8.9배, 세전() 이익은 2700억 원 수준에서 14조2000억 원으로 52.6배 늘었다.

또 같은 기간 시가총액은 1조 원에서 140배인 140조 원으로, 수출은 9억 달러에서 73.7배인 663억 달러로, 해외를 포함한 임직원 수는 16만 명에서 1.6배인 25만 명으로 증가했다.

삼성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다. 매출액은 국내총생산(GDP)의 18%, 시가총액은 상장기업 전체 시가총액의 20%, 수출은 한국 전체 수출의 21%를 차지했다.

화두를 선점하는 재계 리더

이 같은 외형 성장의 배경에는 이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다.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면서 신경영을 선언한 게 대표적이다. 국내 최고라는 허명()에 안주하던 삼성 임직원에게 충격을 줘 관행을 깨지 않으면 공멸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에서 나온 경영론이라는 게 삼성 측 설명이다.

강소국론도 제기했다. 이 회장은 2001년 5월 전자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네덜란드와 핀란드 등 유럽 국가는 규모는 작지만 세계적인 대기업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면서 강국의 위치를 확보했다며 이들처럼 대기업이 국가경제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경영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3년에는 천재경영론을 꺼냈다. 그는 빌 게이츠 같은 인재가 3, 4명 있으면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도 2만 달러, 3만 달러로 늘어날 수 있다며 준비경영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시장이 어떻게 변하든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천재급 인재의 확보에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화두는 2005년 한눈에 삼성 제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독창적인 삼성 디자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디자인경영론으로 이어졌다.

또 2006년에는 과거에 해오던 대로 하거나 남의 것을 베껴서는 절대로 독자성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을 원점에서 보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창조성이 필요하다며 이른바 창조경영론을 제시했다.

이 회장에게 영화()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삼성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일각에서 삼성의 성공을 두고 황제경영의 산물이라는 지적과 함께 삼성공화국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반()삼성 기류는 결국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와 특검으로 이어졌고 이 회장의 퇴진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게 됐다.

이 회장은 이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의 계획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경영 퇴진을 선언하면서 회장 직은 물론이고 삼성 내 모든 공식직책에서 물러난 만큼 당분간 공개적 행보는 극히 꺼릴 것이 확실시된다. 다만 이번 조치에도 불구하고 삼성그룹의 대주주 지위는 여전한 만큼 앞으로 경영권 승계 문제를 포함한 그룹의 핵심 현안에 대해서는 주주로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차지완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