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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묻혀진 살인의 추억

Posted April. 01, 20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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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후반 우리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이 공소시효가 완성(만료)됨에 따라 결국 살인의 추억으로 남게 됐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 9월 15일부터 1991년 4월 3일까지 4년 7개월간 10차례에 걸쳐 경기 화성시 태안 일대에서 일어난 부녀자 강간살인사건.

2일로 10차 사건의 공소시효(15년)가 완성돼 범인을 잡더라도 형사처벌이 불가능해진다. 연쇄살인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난 8차사건(1988년 9월)의 범인만 잡혔을 뿐이다.

10차 사건은 1991년 4월 3일 오후 9시경 화성시 동탄면 반송리 야산에서 권모(69여) 씨가 성폭행을 당한 뒤 스타킹에 목이 감겨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었다. 이후 사건은 더 일어나지 않았고 범인의 윤곽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연쇄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은 모두 목이 졸려 죽었으며 대부분 스타킹이나 양말 등 피해자 옷가지가 이용됐다. 또 피해여성의 음부에서 갖가지 이물질이 발견돼 국민을 경악하게 했다.

다섯 차례 사건에서 범인의 정액과 혈흔, 모발 등을 통해 확인한 범인의 혈액형은 B형이었다. 4차사건 발생 보름 전 성폭행을 당한 뒤 겨우 목숨을 건진 주민의 진술 등을 토대로 한 범인의 인상착의는 20대 중반에 키 165170cm로 호리호리한 몸매였다. 범인에 대한 자료는 이것이 전부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는 당시 현장에서 채취했던 범인의 유전자 정보가 보관돼 있어 용의자가 뒤늦게라도 잡히면 확인이 가능하다.

경찰은 잔인하고 난잡한 수법으로 볼 때 흉악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죄책감을 못 느끼고 범행 자체를 즐기는 사이코패스(psychopath정신질환자)의 소행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역대 최대 경찰력이 동원된 사건이었다. 연인원 205만 명의 경찰이 투입됐고 용의자와 참고인이 2만1280명에 이른다. 지문 대조 4만116명, 유전자(DNA) 분석 570명, 모발 감정 180명의 기록을 남겼다.

수사 기록은 캐비닛 5개 분량. 검찰과 경찰은 공소시효 만료 1년이 지나면 기록을 폐기하는 다른 사건과 달리 이 기록을 영구 보존키로 했다. 사건의 중대성과 국민적 관심을 감안하고 공소시효 이후라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다.

또 과학적인 수사기법들이 서둘러 도입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8차 사건에서 모발 중성자 분석법을 수사 사상 처음 적용했으며 9차와 10차 사건은 일본에 범인 정액의 DNA 감식을 의뢰하는 등 이때부터 DNA 수사기법이 도입됐다.

현재는 화성경찰서의 강력3팀이 사건을 맡아 가끔씩 들어오는 제보를 확인한다. 2003년 개봉돼 500만 명의 관객을 모은 영화 살인의 추억은 화성연쇄살인사건에 대한 관심이 식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가 다가옴에 따라 강력범죄의 공소시효 연장 논의가 일고 있다.

열린우리당 문병호() 의원은 지난해 8월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20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해당 법안은 아직 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최원일() 화성경찰서장은 공소시효와 상관없이 끝까지 추적해 진실을 밝히겠다며 당분간 수사전담팀을 그대로 두겠다고 말했다.



남경현 bibul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