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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컥불뚝도 병?

Posted October. 19, 2003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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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무대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이모씨(39). 매일 아침 운전대를 잡으면서 오늘은 상사와 다투지 말자고 맹세한다. 성질을 가라앉히려 일부러 조용한 음악을 듣는다. 그러나 매번 수포로 돌아간다. 회사에서 상사의 비꼬는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벌컥 목소리가 높아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후회한다.

요즘 대화 중 순간적으로 끓어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상대에게 폭언이나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숱하게 볼 수 있다. 인터넷 도박 섹스 쇼핑 마약 등에 빠졌다가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자멸의 길을 걷는 사람도 많다.

정치인들은 조금만 고민하면 하지 않을 막말을 충동적으로 해 평지풍파를 만들고 순간적인 말실수로 공직에서 물러나는 사람도 잇따라 생기고 있다.

모두 순간적 충동을 조절하지 못해 벌어지는 일이다. 21세기 한국사회는 충동이란 병이 유령처럼 떠도는 사회는 아닐까.

충동조절장애=의학적으로 충동은 뇌에서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가장자리계(변연계)에서 생긴다. 원래 충동은 뇌에서 이성적 판단을 주관하는 이마엽(전두엽)과 가장자리계의 상호작용에 의해 조절된다.

이런 통제시스템에 이상이 생겨 나중에 뻔히 곤경에 처할 일을 당장 하고 싶다고 한다면 충동조절장애라는 병의 환자라고 할 수 있다.

충동조절장애의 종류=모든 중독은 전형적인 충동조절장애에 속한다. 미국의 정신과 질환 진단목록인 DSM-에는 도벽과 도박장애를 충동조절장애로 규정한다. 그러나 학자들은 쇼핑중독 섹스중독 인터넷중독 게임중독 폭식 알코올중독 마약중독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설명한다.

이런 진단 범주에는 들지 않지만 일상생활에서 충동이 고조되는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문제가 되는 행동을 되풀이한다면 넓은 의미의 충동조절장애에 포함된다. 특히 대화 중에 공격적 충동이 억제되지 못하는 간헐 폭발장애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또 사람에 대한 평가나 기분이 극에서 극으로 오가는 경계선 인격장애자도 충동을 잘 조절하지 못한다. 한 가지 일에 쉽게 싫증을 내고 매사에 안달복달하고 호들갑스러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자도 충동조절에 문제가 많다.

왜 한국엔 충동조절장애가 많나=정신의학에서는 대화 중 발끈하는 것을 누군가가 무의식에 억압된 부분을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바꿔 말해 한국사회에서는 의사를 합리적으로 표현하기가 힘들고 금기 사항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불뚝 성미가 있다는 말을 듣는 사람은 평소 자신의 감정을 지나치게 억누르고 있다가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폭발하는 것. 사회 규범이 무너지고 도덕률이 해체될 때 경계선 인격장애와 중독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충동조절장애가 많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해체속도가 그만큼 빠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치료와 예방법=정신과 진단목록에 있는 중독증세는 당장 병원 치료가 필요하다. 일상적인 충동장애도 약물 치료로 효과를 볼 수 있다. 뇌의 이마엽을 활성화하는 리탈린이나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이 적절히 기능하도록 하는 삼환계 항우울제 등을 복용하는 것.

자녀가 충동적으로 자라는 것을 방지하려면 어릴 적부터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고 떼를 쓰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 또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고 가르치기보다는 선악을 논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가르쳐 뇌의 이마엽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평소 취미생활과 여가활동을 통해 무의식에 쌓인 갈등을 풀어주는 것이 좋다. 술로 푸는 것은 좋지 않다. 과음은 뇌의 충동조절 시스템을 손상시켜 오히려 충동적으로 만든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충동성은 성격, 무의식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쉽게 해결될 수 없는 경우가 많으며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도움말=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류인균 교수)



이성주 stein3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