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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세상이 미워요'

Posted September. 03, 2003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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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미워요.

한 14세 소녀의 이 한마디에 온종일 가슴이 무겁다. 소녀와 한 하늘 아래서 호흡하고 있는 어른들은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을 것 같다. 이건 해도 너무한 일이다. 말 그대로 인면수심()이다. 꼭 그 또래 딸아이를 가진 필자는 더욱 할 말을 잊는다. 집에 가서 딸아이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우리를 부끄럽게 한 14세 소녀는 모든 한국 남성들에게 묻고 있다. 당신들도 모두 공범 아닌가요?

부모와 어린 두 동생과 함께 서울 마포구에서 단란하게 살고 있던 최모양에게 불행이 드리운 것은 지난해 6월. 노동을 하는 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 아버지의 동료가 어머니를 겁탈하고 이어 자신까지 성폭행하면서 소녀는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성폭행은 어머니의 원치 않는 임신과 정신이상, 아버지의 가출로 이어졌고 4월 초 그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맏이인 소녀는 가족을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에 돈벌이에 나섰다.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인터넷 채팅에 나선 그는 우연히 성매매의 유혹에 빠져들었다.

소녀는 5개월 동안 30여명의 오빠와 아저씨를 만났다. 회사원, 대학생, 헬스클럽 강사, 무직자 등 20, 30대 초반의 남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소녀를 불러냈다. 그들로부터 5만원, 10만원을 받아 어머니 병원비를 대고 어린 동생들을 배불리 먹이면서 소녀는 죄의식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린 소녀를 얕잡아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는 한낱 어른들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했다. 대학생 오빠는 세 차례 성관계를 가진 뒤 담배 한 갑과 현금 8000원을 주고 갔고, 28차례나 성관계를 가진 회사원 아저씨는 1만5000원을 내놨다. 소녀는 약속도 안 지키고 욕심만 채우는 남자들이 밉다고 했다. 1000원을 주고 간 오빠와 100원짜리 동전 몇 개를 던져두고 간 아저씨가 있었다는 얘기엔 할 말을 잊게 된다.

경찰은 소녀의 휴대전화에 기록이 남아있는 남성 18명을 붙잡아 이중 성관계가 확인된 4명에 대해 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그들을 벌하는 것만으로 세상에 대해 증오를 품게 된 열네 살 어린 소녀의 상처를 달랠 수 있겠는가. 소녀의 아버지가 이제라도 집으로 돌아가 가정을 추스르고, 부끄러운 마음들이 모여 드러내지 않고 소녀의 가족을 후원해 주었으면 좋겠다. 담당경찰관은 아이가 영특하기 때문에 주위에서 잘 보살펴만 준다면 얼마든지 바르게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