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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울 88위

Posted March. 05, 2003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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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일등을 했고 누가 꼴등을 했는지는 항상 관심거리다. 순위가 없다면 올림픽이나 월드컵대회가 인기를 끌었을까. 스포츠 스타들의 연봉이나 연예인의 인기도 순위가 있어야 볼 만하다. 월드컵 4강 신화에 열광했던 한국인들은 아마도 다른 어느 나라 사람보다 등수를 따지는 데 익숙할 것이다. 삶의 질이나 행복을 따질 때도 다른 나라, 다른 도시와 견주어서 순위가 높아야 더 행복하고 살기 좋다고 여기게 되는가 보다.

사람들의 이런 순위 집착증 때문인지 각종 순위를 조사해 발표하는 곳이 많다. 어디가 살기 좋고 행복한 곳인지에 대한 기준도 제각각이다. 경제적인 요인만 생각하면 소득수준이 가장 객관적인 척도이겠지만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합한 경제고통지수(misery index)를 따지기도 한다. 실업자가 적고 물가가 싸야 살기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유엔에서는 매년 소득 교육수준 수명 등을 따져 인간개발지수를 발표한다. 작년에 173개 국가 중 한국은 27위였다. 몇 년 전 런던정경대학이 조사한 국가별 주관적 행복도에서는 방글라데시가 1위에 오른 반면 미국은 46위, 한국은 23위에 그친 것을 보면 행복과 소득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최빈국에 속하는 방글라데시 국민이 가장 행복하다고 여긴다는 조사결과를 현정부의 경제브레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성장보다는 분배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분배론자들에겐 방글라데시의 경우가 더 없이 좋은 본보기가 된다. 분배론자의 대표격인 이정우() 신임 대통령정책실장은 행복은 다른 사람과 비교한 상대적인 소득수준에서 결정되므로 성장보다 분배가 더 중요하다(한국경제학회 창립 50주년 기념논문)고 주장한다. 가난하더라도 남보다 더 가난하지 않으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인 듯하다. 하지만 가난하지만 행복한 방글라데시에 가서 선뜻 살겠다고 나서는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도시에서의 삶의 질을 따지는 기준은 또 다르다. 머서 휴먼 리소시즈컨설팅이라는 회사는 전 세계 215개 도시 중 서울이 88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건강 교육 교통 등 39개 요인을 비교 검토했다고 한다. 작년 조사 결과이니 대구의 지하철 사고나 최근의 북한 핵위협은 감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위스의 취리히가 2년째 1위에 오른 반면 전쟁 위협을 받고 있는 이라크의 바그다드는 뒤에서 3번째를 기록했다. 행복하기 위해선 소득도 분배도 중요하지만 안보와 안전이 우선 보장되지 않은 행복은 한낱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듯하다.

박 영 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