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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충돌이 아닌 교류다

Posted November. 17, 200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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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일(67) 전 단국대 사학과 초빙교수(동서교섭사 전공)가 무려 원고지 1만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 두권을 한꺼번에 냈다. 고대문명교류사와 실크로드학이 그것이다. 정 교수는 지난 96년 7월 간첩 혐의로 구속 수감돼 12년형을 선고받고 5년 동안 복역한 뒤 지난해 815때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이른바 그 유명한 깐수사건의 주인공. 수감생활 동안 대중에게 잊혀졌던 그가 지난 9월 14세기 이슬람세계와 동서교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인 이븐 바투타 여행기(2권창작과 비평사)를 세계 두 번째로 완역해 내 출판계와 학계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었다. 그리고 두달여만에 다시 새로운 2종류의 책을 냈다.

고대문명교류사는 정 교수가 앞으로 펴낼 문명 교류 통사의 첫편이다. 중세와 근현대도 곧 나온다. 교류사란 인류 5000년 문명사를 왕조의 흥망성쇠나 진화론적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교류와 소통을 화두삼아 풀어 내려는 시도다. 아직 학문적 정립이 명확치 않은 이 작업에 정 교수가 몰두한 것은 역사를 교류사적 시각으로 볼 때 동이니 서니 선진이니 후진이니 하는 경계를 넘어 호혜적인 넘나듦과 주고받음으로 문명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700쪽이 넘는 고대문명교류사에는 태고부터 로마시대까지 문명교류의 시원()과 다양한 교류상이 펼쳐진다. 예를들어 옥 유리와 보석류의 광범위한 전파를 통해 문명 교류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인도의 불상이 그리스문화와 합쳐졌을 때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 보여주는 식이다. 이러다보니 주변이란 범주에 묶여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스키타이와 흉노()를 비롯한 북방 유목 기마민족 문명도 교류라는 실에 꿰어져 빛을 발한다.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혀내는 작업이라기보다 역사와 문명을 보는 또 다른 안경을 제시하는 시도로 보여진다.

교류사가 역사를 보는 거시적인 틀을 보기 위한 키워드라면 실크로드는 교류사를 보는 미시적인 키워드다. 문명교류에 관심을 갖다보면 그 통로가 되었던 실크로드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 정 교수가 아예 그것만을 따로 떼 씰크로드학이라 이름 붙여 책을 내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실크로드를 통해 수천년간 인류가 어떻게 오갔고 무엇을 교류했는지 연구하다 보면 교류사의 전체 밑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구체적으로 교류의 담당자들이 무엇을 했는지 알아보면 화석화된 교류사가 현재로 살아나기 때문이다.

집필에 얽힌 얘기를 듣고 싶어 15일 오전 그의 서울 금호동 집을 찾았지만 신분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만날 수 없다는 부인의 인터폰 대답만 흘러 나왔다.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더 설득하고 싶었지만 (남편이)하루 두세시간 밖에 자지 못해 건강이 너무 나빠졌다는 부인의 말에 약해져 발걸음을 돌렸다.

궁금한 것을 e메일로 물어 볼 수 밖에 없었다. 정 교수는 실크로드학은 대학원에 문명교류사연구 과목을 만들면서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것인데 구금이 되어 교과목이 폐강됐다며 제자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메모라도 모아두면 언젠가 필요하겠지 싶어 한 2년 옥중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고대문명교류사는 95년 이미 작업을 끝낸 것을 이번에 펴냈다고 한다. 수감기간 동안 세상과 소통할수 없었고 출소후에도 무국적 상태라 도서관 출입이 어려워 책에 나오는 자료가 모두 5년전 것들이란다. 양심에 꺼려 출판을 단념하려고 했지만 겨우 용기를 냈다고 한다. 이븐 바투타 여행기를 낼 때도 옥중에서 1015cm 쪼가리 종이 20여장을 일일이 밥풀로 붙여 4절지 지도를 완성했었던 그는 이번 두책에서도 직접 그린 수십여컷의 섬세한 지도, 수백여개의 색인을 붙여 학자적 엄격성을 보여 주었다. 실크로드학을 입체적으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만들었다는 동서교류의 3대 간선로인 초원의길(스텝로), 실크로드 남북로, 해로()등을 자세하게 묘사한 동서교류 3대 간선로 지도는 역작으로 평할 만하다.

고대문명교류사

정수일지음

사계절출판사

실크로드학

창작과 비평사



허문명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