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원로 화가 이우환 화백(80)의 작품으로 위조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그림 13점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에서 가짜로 판명됐다. 미술계는 “불확실성이 사라졌다”며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경찰의 의뢰를 받은 국과수가 올해 1∼5월 위작(僞作) 의혹이 있는 그림 13점을 이 화백의 진품 6점과 비교 분석한 결과 물감 성분과 제작기법이 진품과 크게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2일 밝혔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K옥션 경매에서 약 5억 원에 낙찰됐던 그림 1점과 개인 소장 4점, 유통 및 판매책으로부터 압수한 8점 등 총 13점의 위작 여부를 가리기 위해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다. 국과수는 법화학 기법과 디지털 분석기법을 통해 감정한 결과 의혹이 제기된 그림에 쓰인 물감의 납 성분은 진품의 절반 이하였고, 일부 성분은 아예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들어 위작이라고 결론 냈다. 붓질의 방향 등 제작기법과 서명도 진품과 달랐다.
국과수에 앞서 감정을 진행했던 국제미술과학연구소, 한국미술품감평원, 민간감정위원회도 일부러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덧칠한 흔적이 있는 점 등을 근거로 의혹을 받고 있는 그림 13점이 위작이라고 판단했다.
경찰은 지난달 위조 총책 현모 씨(61)를 사(私)서명 위조 혐의로 구속하고, 현 씨의 지시를 받아 위작을 만든 A 씨(40)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로부터 “2012년 그린 위작 50여 점을 유통책에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은 또 이우환 화백에게 위작 감정을 의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국과수의 감정 결과를 두고 미술계 인사들은 대부분 반기는 분위기다. 위작 판정된 그림의 공통점을 정리하면 앞으로 이 화백의 그림을 감정하는 새로운 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을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윤석 서울옥션 상무는 “미술품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특정 작가 또는 작품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위작 결론이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찬규 학고재 회장은 “최대한 빨리 수사 결론이 나오길 기다렸다. 근거 없는 소문이 떠돌면서 이 화백의 모든 그림이 의심을 받았다. (경찰이) 이 화백에게도 그림을 보여주고 의견을 받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호경 whalefisher@donga.com·손택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