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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신세계호 투톱 구학서회장 – 정용진대표 인터뷰

새로운 신세계호 투톱 구학서회장 – 정용진대표 인터뷰

Posted December. 03, 2009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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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신세계 대표이사 부회장(41)이 탄 검은색 BMW 7시리즈 승용차가 2일 서울 중구 충무로 신세계 본사 사옥 앞에 스르륵 멈춰 섰다. 시계는 오전 8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 부회장이 1일 신세계 대표이사로 취임한 후 첫 본사 출근이었다.

비교적 대외활동이 많지 않았던 정 부회장은 대표이사가 된 첫날인 어제는 하루 종일 이마트 등 영업현장을 돌아봤다고 한다. 그는 1995년 12월 신세계 전략기획실 이사 대우로 시작해 상무, 부사장, 부회장을 거치는 등 만 14년의 경영수업을 받았다.

오전 6시 반부터 신세계 본사 로비에서 기다린 지 2시간 만이었다. 이미 구학서 신세계 회장(63)은 대표이사를 지냈던 지난 10년을 늘 그랬던 것처럼 오전 7시 반에 현대자동차 에쿠스를 타고 출근했다. 신세계 직원들은 정 부회장님은 오전 9시 이전에 회사를 나온 적이 거의 없고, 간혹 다른 일을 보고 오후에 출근하실 때도 있었다며 망연히 기다리는 동아일보 기자들을 안쓰러워했다.

이젠 직접 임직원들로부터 보고도 받고 결재도 하셔야 하니, 앞으로는 회사를 일찍 나오시는 게 좋겠습니다. 1일자로 대표이사를 정 부회장에게 넘겨주고 승진한 구 회장의 조언 때문이었을까. 정 부회장은 그렇게 예상보다 일찍 나타났다. 직책 없이 직위만 부여받았던 부회장에서 책임이 막중한 대표이사 부회장이 된 그가 운전하는 신세계 호()의 항로에 각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 부회장은 감색 모직 투버튼 블레이저 재킷의 콤비 정장 차림으로 격식을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젊은 패션 감각을 보였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정 부회장의 외할아버지)의 금색 흉상이 놓인 신세계 본사 로비에서 그에게 대표이사에 오른 소감을 묻자 책임을 막중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에도 책임이란 말을 힘주어 두어 차례 더 했다. 몇 달 전 이병철 창업주의 초상화가 걸린 집무실에서 만났을 때는 아직 (경영을) 많이 배우는 중이라서요라고만 했던 그다.

이날 먼저 만났던 구 회장은 정 부회장이 결코 짧지 않은 경영수업을 끝내고 얼마 전부터 직접 경영을 하고 싶어 했다며 평소 친분이 깊어 자주 어울리는 다른 재계 오너 3세들이 전면에 나서는 추세도 그에게 자신감을 줬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번 인사는 정 부회장의 어머니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의지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올해 66세인 이 회장은 더 나이 들어 기력이 쇠하기 전에 용진이(정 부회장)가 대표이사를 맡아 잘하는 걸 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늘 어머니와 붙어 다녀 누구보다 경영수업을 착실하게 받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정유경 전 조선호텔 상무(37)가 이번에 신세계 부사장으로 전격 승진한 것도 같은 배경이다.

정 부회장은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신규 사업 등 신세계 경영을 전방위로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깍듯한 태도로 말을 아꼈지만 표정과 목소리에선 자신감이 넘쳤다.

정 부회장은 2006년 부회장이 됐지만 임원 회의에서조차 늘 말수 없이 듣는 편이었다. 하지만 평소 그는 유통업의 생명은 소비자 트렌드를 읽는 것이란 말을 자주 했다. 신세계에 조금씩 젊고 고급스러운 감각을 불어넣은 것도 그의 노력이다.

와인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지난해 말엔 신세계 와인 수입 계열사인 신세계L&B 설립을 주도했고, 해외 백화점을 자주 돌며 간편한 소포장 식품 확충을 제안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2층 자택에서 달마시안과 골든리트리버 등 5마리의 개를 키우는 그는 이마트 매장의 애완견 용품도 늘렸다. 새롭고 무궁무진한 온라인 유통 시장을 잡기 위해 이마트몰도 강화하려고 한다.

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등과 함께 일명 범 삼성 가() 3세 모임도 가졌다. 하지만 이 모임은 지금 명맥이 끊길 위기라고 한다. 다들 각자의 회사에서 위상이 커지면서 시간 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란다. 정 부회장도 이날 연말까지는 업무 파악에 힘써야 한다며 대표이사가 되니 말 한마디에도 신중해진다고 말했다.

신세계 직원들은 10년을 대표이사로 지내며 회사를 성장시켜온 구 회장을 존경하면서도,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하고 경영할 수 있는 40대 젊은 오너 대표에 대한 기대가 크다. 이에 대해 구 회장은 기업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효율을 따져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높이는 것이라며 다른 기업에서는 오너 2, 3세들이 자신의 취미라는 이유로 수입차, 레저, 외식 사업에 무작정 뛰어들기도 하지만 엄격한 경영수업을 받은 정 부회장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 회장은 샐러리맨들에게 희망이 되는 기업인이다. 1972년 삼성그룹 공채 13기로 삼성전자 경리과 사원으로 입사해 제일모직, 삼성물산 등을 거쳐 1999년부터 만 10년을 신세계 대표이사로 지냈다.

그의 생활신조는 공자의 어록인 군군신신부부자자(임금, 신하, 아버지, 아들이 각자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 그는 늘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남들보다 조금 일찍 승진하고 싶은 마음으로 일했다며 요즘 신입사원 중 일부는 궂은일을 맡기면 나를 어떻게 보고라며 쉽게 회사를 나가버려 안타깝다고 말했다.

신세계 본사 19층엔 구 회장과 정 부회장의 집무실이 예나 지금이나 나란히 붙어 있다. 구 회장은 이제 원치 않아도 나서야 했던 대외 활동을 줄일 수 있어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구 회장은 이제 정 부회장을 돕는 경영 조언자로 변신했다. 정 부회장이 앞에서 끌고 구 부회장이 뒤에서 미는 새로운 신세계 교향곡 연주가 시작된 것이다. 노련한 전문경영인 구 회장과 젊은 오너 정 부회장의 콤비 플레이가 기대된다.



김선미 박재명 kimsunmi@donga.com jm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