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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정 흔드는 위원회 공화국 수술해야

[사설] 국정 흔드는 위원회 공화국 수술해야

Posted May. 28, 20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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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담도 개발사업의 가장 큰 의문은 왜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가 끼어들었느냐는 점이다. 자문기구에 불과한 동북아위는 행담도개발의 해외채권 발행을 위한 정부지원 의향서(추천서)를 위원장 명의로 써 줬고, 이 회사와 사업협력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했다.

대통령령인 동북아위 규정에는 심의(2조)와 협조요청(12조) 조항은 있으나 결정집행 관련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외자유치 같은 집행 업무에까지 손을 댔다. 명백한 월권()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 관련부처들은 외면당하고 배제됐다.

문정인 동북아위 위원장은 물러났다. 하지만 대통령 자문위의 문제는 동북아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헌법상 독립위원회를 제외한 대통령소속 위원회는 23개다. 국가균형발전위, 정부혁신지방분권위 등 자문위가 19개이고 규제개혁위, 부패방지위 등 행정위가 4개다. 이런 위원회는 지난 정부 말기 18개였으나 5개가 폐지되고 10개가 새로 생겼다. 문제는 새로 생긴 자문위 대부분이 대통령령으로 설치됐다는 점이다. 법률에 따른 조직이 아니어서 대통령의 임의적 독단적 생각에 따라 운영되고 대통령의 힘을 배경으로 권한을 남용할 소지가 그만큼 크다.

각종 대통령 자문위는 내각 위의 내각으로 국가정책 결정에 깊숙이 간여하면서 부처들을 흔들어댔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위헌 결정을 받은 수도 이전이나, 국민의 반발을 부른 여러 차례의 부동산 관련 정책들도 대통령 자문위에서 결정했다.

대통령의 중장기적 국정과제 개발을 도와 줄 위원회가 필요한 점은 있다. 그러나 그것도 적정선에 그쳐야지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대()해지면 문제는 달라진다. 실제로 대통령 자문위의 인원은 김대중 정부 말기 300여 명에서 500여 명으로 크게 늘었고 관련 예산만도 연간 700억800억 원에 이른다.

자문위 위원 상당수가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다는 이유로 선발됐고 이 중에는 전문성이나 실무경험과는 거리가 먼 이념 프로, 행정 아마추어가 많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만든 위원회가 한 쪽의 편향된 의견만을 듣거나 반영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통령소속 위원회에 대한 별다른 견제 감시 장치가 없다. 국회의 요청에 따라 감사원이 올봄 이들 위원회의 운영 및 예산집행 실태에 대한 특감을 했으나 겉핥기에 그쳤다. 이처럼 많은 위원회가 왜 필요한지, 위원 수는 적정한지, 부적격자는 없는지, 예산이 적정하게 책정돼 낭비 없이 제대로 집행하고 있는지 등 핵심 사항은 비켜갔다.

대통령 위원회에 대한 공직사회의 불만도 크다. 주요 정책은 로드맵이라는 이름으로 위원회가 만들어 놓고 일이 잘못되면 부처만 욕을 먹고 있다는 소리도 심심찮게 나온다. 오죽하면 정부중앙청사와 청와대 주변이 온통 위원회 사무실이다. 위원회를 그렇게 많이 만들어 자기들이 일을 다 하는데 부처 공무원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푸념이 나오겠는가.

여러 부처와 학계, 야당 등에서 위원회를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으나 청와대가 이를 묵살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말 위원회 공화국이라고 하는 데 그 말이 맞다. 그러나 부처의 벽을 허물고 통합적 정책을 만들기 위해 위원회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많은 위원회들이 훌륭한 정책 통합을 통해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미국의 연방 자문위원회 법은 필요성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을 때만 자문위를 신설하도록 하고 있다. 자문위의 기능도 자문()으로 엄격하게 한정해 이를 벗어나는 역할의 수행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문 위원장의 사퇴로 대통령 자문위의 월권 문제가 해소된 것은 결코 아니다.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따라 꼭 필요한 위원회가 아니면 과감하게 폐지, 축소 또는 통폐합하는 게 옳다. 대신 국무위원들이 소관업무에 대해 소신을 갖고 일하도록 해줘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이 강조해 온 분권()의 정신과도 맞다. 이대로는 위원회들이 제2, 제3의 행담도 의혹을 낳을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