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발생 이후 전파 과정에서 일어난 정치-문화-종교적 교류 살펴 “전 세계 문자 중 가장 쉽고 편한 한글, 디지털 혁명 적응 속도 높여” 미국 출신으로 영어가 모어인 저자,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어로 써내 ◇문자 전파담/로버트 파우저 지음/512쪽·3만5000원·혜화1117
‘문자 전파담’은 문자가 어떻게 생겨나고 전파됐는지, 그 역사를 돌아본 책이다. 저자는 외국어 전파 과정을 통해 세계사를 살핀 책 ‘외국어 전파담’으로 2018년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미국인으로 영어가 모어인데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지내며 한국어로 책을 집필해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이슬람 사원에서 절하는 방향을 알려주는 벽감인 미흐랍이 화려한 아랍 문자로 장식된 모습. 혜화1117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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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문자가 발생한 지역이 더 우월한 문명을 갖고 있다’거나 ‘특정 지역이 변방의 문자 문화를 이끌었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문자의 역사를 살펴보는 점이 흥미롭다. 세계 곳곳의 문화권들이 큰 제국과 종교의 패권 속에서도 어떻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문자를 수용하고 변형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독자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했는지를 수평적인 시각에서 전개한다.
문자의 긴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전파 과정에서 일어난 정치·문화·종교적 교류를 살펴볼 수 있다. 언어는 인간이 태어나며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이지만, 문자는 후천적인 학습을 통해 익힌다. 이 때문에 자동적으로 확산되지 않고 받아들이는 쪽의 선택과 저항이 일어난다. 이러한 과정을 보면 문자는 소수 문명의 전유물이 아니다. 인류 전체가 공동으로 일구어 낸 하나의 ‘모자이크화’란 사실을 알게 된다.
세종이 1443년 창제한 ‘훈민정음’의 해례본.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문자의 역사를 공부할수록 한글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문자 가운데 가장 쉽고 편한 문자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점도 짚었다. 한국은 일찌감치 디지털 혁명에 적응하며 2000년대 인터넷 강국이 됐다. 2010년대엔 소셜미디어와 게임 보급률도 매우 높았다. 그리고 2020년대에는 AI에 가장 빨리 적응한 나라로도 꼽힌다. 이런 배경엔 쉽고 효율적인 문자인 한글이 크게 도움이 됐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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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