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적 경기 부진 아닌 경제 기초체력 약화 저출산-고령화로 복지 지출은 계속 늘어나 현금 살포 정책으로는 미래 버틸 수가 없어 재정 지출 속도 방치하면 후대가 평가할 것
송인호 객원논설위원·KDI 경제교육·정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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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에는 ‘잠재성장률’이라는 말이 있다. 무리 없이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경제의 속도다. 사람으로 치면 타고난 기초체력에 가깝다. 문제는 한국 경제에 이 체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의 질문은 “체력을 다시 예전처럼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라 “이 체력 저하를 얼마나 늦출 수 있느냐”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체력이 약해지는 속도보다 그 체력으로 감당해야 할 부담이 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 성장의 엔진이 마모되면서 나아가는 속도는 느려지는데 재정 지출은 자동으로 불어나고 있다. 그 중심에 고령화가 있다. 경제의 기초체력이 약해질수록 선택의 여지는 줄어든다. 즉, 나이 든 인구가 많아질수록 연금, 의료, 돌봄에 들어가는 재정 지출은 이미 정해진 룰에 따라 자동으로 더 늘게 된다. 말하자면 앞으로의 복지 예산은 정부 설계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인구 구조가 미리 결정해 놓은 비용에 가깝다.
숫자로 확인해 보자.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초반 4∼5% 수준에서 2010년대 후반 2%대로 낮아졌고, 2020년대 들어 1%대로 떨어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전망에 따르면 2030년대 후반에는 0%대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경기 부진이 얼마간 지속되는 문제가 아니다. 인구 구조가 바뀌고 생산성 향상의 속도가 둔화하면서 나타나는 구조적 변화다. 다시 말해 경제의 체력이 약해진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의 재정 부담까지 커지는 방향으로 시스템 자체가 옮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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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는 복지 지출을 자동으로 늘린다. 연금과 의료비, 돌봄서비스는 경기가 좋든 나쁘든 계속 증가한다. 제도가 지금처럼 유지돼도 재정은 점점 더 경직되는 구조다. 실제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 비중은 2010년 7.4%에서 2024년 두 배 이상인 15.3%로 뛰었다. 같은 기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20.5%에서 21.2%로 거의 제자리걸음이었다. 미국은 19%에서 19.8%에 그쳤다. 일본과 프랑스는 애초에 복지 지출이 높았지만 증가 속도는 완만했다. 예산 구조를 보면 더 분명하다. 보건·복지·고용 분야 본예산은 2010년 81조2000억 원에서 2026년 269조1000억 원으로 늘었다. 약 230% 증가다. 전체 국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7.6%에서 36.5%로 확대됐다.
여기에 저출산은 잠재성장률의 근간을 흔든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 수)은 2024년 0.75명이었다. 지난해 0.8명으로 반등했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여전히 OECD 최저 수준이다. 노동력 감소는 생산성 혁신으로 어느 정도 메울 수 있다. 하지만 출발선 자체가 무너지면 성장의 밑바닥은 더 낮아진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도 여러 차례 “세대마다 한국 인구의 3분의 2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금의 출산율이 지속되면 나라 전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 과장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인구와 성장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흘려들을 말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금성 지원을 계속 늘리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현금 살포는 단기적으로 소비를 늘릴 수 있으나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지는 못한다. 오히려 재정의 여력만 약해진다. 연구개발(R&D)과 기술 혁신, 인적자본 투자 같은 진짜 해법에 쓸 돈이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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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호 객원논설위원·KDI 경제교육·정보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