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리 에세이스트
최상급 미역에 미역귀까지 넣어 곰탕처럼 폭 고아 만든 바다 할머니표 미역국. “아까워 말고 애기들 푹푹 떠먹여라. 우리 집에선 미역국이 만병통치약이다”라는 할머니의 말처럼 앓던 아이들은 미역국으로 씩씩하게 기운을 차렸다.
김장김치도 꺼내 먹었다. 매운데 너무 맛있다고. 바다 할머니들의 김치는 도파민 팡팡이라며 아이들이 엄지를 추켜세웠다. 엄마랑 이모들, 바다마을 다섯 자매가 모여 담근 김치였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엄마의 미역국에 이모들 김치를 올려 먹는데, 속이 왈카당 뭉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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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져 살던 이모들이 초겨울에 고향집으로 모였다. 어디 단풍 구경이라도 가려나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을 때, “이모들 모여서 김장한다!” 수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다 같이 논다며?” 내가 되물었더니 엄마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이게 노는 거지. 언니들이 100포기는 담글 기세다. 고춧가루를 좋은 걸로 빻았는데 너무 맵네. 할머니들은 입맛이 점점 짜진다니까. 그래도 어째. 그냥 맵고 짜게 먹어야지.”
솔짝솔짝 울다가 다 같이 놀자며 고향 집에 모인 다섯 자매는 팔을 휘 걷어붙이고 김장을 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고향 집에서 이모들은 어떻게 놀았을까. ‘야야, 언니야, 그때 우리 생각나나. 낮은 담벼락보다도 키가 작고 깡말랐던 시절에, 딸만 다섯이라고 미역 나르고 노가리 떼면서 솔짝솔짝 울며 드나들던 정지에서. 그때 우리가야.’
예순부터 팔순에 이르는 할머니들이 바닥에 퍼더앉아서는 빤한 추억의 레퍼토리를 나누며 웃다가 울다가 그랬겠지. 눈에 선했다. 어릴 적이랑 똑같은 마음으로 깔깔거리는 이모들의 웃음이, 추억의 방에 찐득하게 괴어 문지방 너머로 넘쳐흘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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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 눈에는 애 엄마인 나도 다 같은 애기라서 철딱서니가 없다. “김치가 너무 매워서 자꾸만 눈물 나잖아” 샐쭉거리며 괜한 볼멘소리를 전해줄 이모들이 아직은 곁에 있어서 다행이다. 암만 그래도 미역국에 밥 말아 김치를 올려 먹을 때마다 눈물이 왈카당 명치에 얹힌다. 아프지 마라. 할머니들도 아프지 마라. 나는 솔짝솔짝 울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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