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우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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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중독은 나라를 병들게 한다. 한 번 늘린 씀씀이는 되돌리기 쉽지 않다. 과도한 복지 지출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114%에 달하는 프랑스가 그런 상황이다. 막대한 재정 적자를 줄이려 정부가 긴축 예산안을 편성했지만 극심한 국민적 반발과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주도해 온 연금개혁은 결국 중단됐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2026년 주요 선진국에서 재정위기가 터질 수 있다’고 경고하며 사실상 프랑스를 지목한 이유다.
한국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재정 중독에 가까워지고 있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2019년 이후 줄곧 적자였다.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4대 보장성 기금을 제외하고 실질적인 나라살림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2008년 이후 18년째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이 49.1%로 프랑스의 절반 수준이라 위급한 상황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랏빚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기획재정부가 8월 내놓은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국가채무는 2025년 1302조 원에서 2029년 1789조 원으로 487조 원 급증한다. 문재인 정부 5년간 늘어난 404조 원을 훌쩍 넘어선다. 국가채무 비율도 58.0%까지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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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의 확장재정 드라이브에는 브레이크가 보이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일 내놓은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한국의 재정 문제와 관련해 “재정 건전성 강화를 위한 계획이 없다”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달 발표한 ‘2025년 한국 연례협의 보고서’에서 “세입 확충과 지출 효율화 노력을 지속하고 ‘재정기준점(fiscal anchor)’을 포함한 신뢰할 수 있는 중기재정체계를 강화해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실제로 재정 건전성에 대한 정부의 인식은 점차 무뎌지고 있다.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정부가 모두 재정준칙 법제화를 시도했지만 유독 이번 정부는 거리를 두고 있다. 특히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매년 포함됐던 ‘재정준칙’이라는 표현이 올해 삭제된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재정준칙은 나라의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채무 비율 등에서 구체적 목표를 수치로 정해둔 규범이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재정준칙을 도입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튀르키예 두 곳뿐이다.
대통령실은 주요 현안마다 레드팀이 활약한다고 홍보하지만 정작 확장재정 정책을 방어할 레드팀은 실종 상태로 보인다.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는 욕을 먹었던 기재부가 해체되더라도 내년부터 정부 지출을 관리할 기획예산처는 재정 중독으로 가는 길목을 지키는 최후 보루가 돼야 한다.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지 않기 위해 쓴소리할 레드팀은 새로 만들어질 기획처에도 대통령실 내부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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