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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첫 한인 이민자, 그의 이름은 ‘코리아’ 였다”

입력 | 2025-11-20 03:00:00

‘이민의 진화’ 펴낸 송지영 교수
“존 코리아라는 이름의 청년 첫발… 19세기 말 많은 한인들 호주서 일해”
워킹홀리데이 세대까지 역사 담아
“더 나은 삶 찾아 이민 떠나지만, 어디가 더 나은 사회인지 고민
내년 존 코리아 묘비 세우고 싶어”




호주 최초의 한인 유학생으로 알려진 김호열은 1921년 호주 장로교 선교사들의 초청을 받아 멜버른대에서 공부했다. 사진은 그의 외국인등록증신청서와 사진. 푸른숲 제공

《우리에겐 아픈 역사인 강화도조약이 체결되던 1876년, 한 열일곱 살 조선 청년이 중국 상하이에서 호주행 배에 올랐다. 당시 호주는 골드러시로 금광 채굴 인력이 몰리던 시기. 그는 수많은 중국인들에 섞여 신세계로 갔다. 18년 뒤 1894년 시민권을 받으며 ‘존 코리아(John Corea)’라고 이름 지었다. 현재 기록상 확인되는 호주 최초의 한인 이민자다.》




이 존재를 세상에 알린 건 송지영 호주국립대 교수(49·정치학 전공·사진)다. 2016년 이민 간 그는 호주연구재단 지원을 받아 ‘재호 한인 이민사’를 정리하는 연구팀을 이끌고 있다. 호주에서 한국인 이민사를 독립적으로 연구하는 팀을 만든 건 처음이다.

17일 캔버라 자택에서 동아일보 화상 인터뷰에 응한 송 교수는 “존 코리아는 ‘코리아’란 성을 기록으로 남긴 덕에 찾을 수 있었다”며 “19세기 말 호주에 많은 한인이 있었고, 광산 등 산업 곳곳에서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송 교수가 이런 이민사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조망한 책 ‘이민의 진화’(푸른숲)가 5일 국내 출간됐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호주에 다다른 청년들부터 오늘날 워킹홀리데이 세대까지 시대마다 변화한 이민의 역사를 담았다.

한국전쟁 당시 압록강 유역에서 호주군에 발견된 최영길. 그는 전쟁 내내 호주군 3대대의 ‘마스코트 보이’로 함께 생활하다가, 1968년 호주군 초청으로 영구 이민을 떠났다. 푸른숲 제공

호주 내 한인 디아스포라(Diaspora) 연구는 한국 근대사를 이민사란 새로운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시도이기도 하다. 시대별 한국 사회가 겪은 문제들이 다양하게 노정된다. 송 교수는 “특히 청년들은 ‘인간 안보(human security)’가 보장되는 곳으로 이동한다”며 “이민은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은 한국의 미래를 비춰 보는 지표”라고 했다.

‘인간 안보’는 1994년 유엔개발기구가 세계 이주와 이민 동기를 파악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 이민의 정치적·경제적 요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자는 뜻이다. 송 교수가 재호 한인동포 78명을 인터뷰했더니 ‘과도한 경쟁’과 ‘수직적인 직장 문화’ 등이 한국을 떠난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실은 송 교수 역시 1세대 이민자다. 한국에서 30년, 영국 5년, 싱가포르 5년을 거쳐 호주에서 10년째 살고 있다. 한국에서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일하던 시절 극심한 번아웃을 겪은 뒤 유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도 인간 안보를 꿈꾸며 호주로 향한 청년이었던 셈이다.

송 교수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주로 북한인권 등 탈북자 연구를 했다. 이후 한국의 결혼 이주 여성 문제에도 집중했다. 이러한 경계인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재호 한인 연구로 이어졌다. ‘호주에서 더 행복한가’를 묻자 “가지 않은 길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건 참 어렵다”고 했다.

“20년 전 한국에서 성차별에 회의를 느꼈지만, 호주엔 인종차별의 벽이 있었습니다. 1세대 이민자들이 20대엔 현지인보다 건강하지만, 40대에 들어서면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암 발생률도 높다는 연구가 많아요. 나이가 들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1세대 이민자들의 건강이 생애 주기를 거치며 어떻게 변하는지도 중요한 연구 주제죠.”

그는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나는 게 이민이지만, 어디가 더 나은 사회인가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다”고 했다. 특히 존 코리아 관련 자료를 찾으며 그런 생각이 더 깊어졌다. 코리아는 빅토리아주 밀두라 근처 니콜스 포인트 묘지에 묻혀 있었다. 정부 기록을 검색해 찾아낸 자리는 묘비 하나 없는 평지였다고 한다.

타국에서 생을 마친 첫 재호 한인의 묘. 그 앞에서 송 교수는 “나는 어디서 죽고 싶은가란 질문을 자주 떠올리게 됐다”고 했다. 내륙 황무지 묘지는 가톨릭과 유대인, 중국인 묘역 등 구분이 여전히 남아 있다. 죽어서도 나눠져 있는 삶. 송 교수는 책의 수익금을 모아 존 코리아의 묘비를 세울 계획이다.

“내년이 존 코리아가 호주에 온 지 150주년이에요. 꼭 묘비를 세워 드리는 게 제 꿈입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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