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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형벌 3건중 1건 중복 제재… 5중 처벌까지”

입력 | 2025-11-11 03:00:00

한경협 “획기적 제도 개선 필요”
“담합땐 징역-벌금-과징금-손배
준법조직 못갖춘 中企 문닫을 판
경미한 미신고 형사처벌 불합리”




현재 동종 업계 업체들이 납품 단가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다가는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해당 업체는 징역, 벌금을 중복해서 처벌받을 수 있고 여기에 매출액 20% 이내 과징금과 징벌적 손해배상(최대 3배)까지 물어야 할 수도 있다. 사업자 간 정보 교환 행위 하나로 최대 4중 처벌을 받게 되는 셈이다.

정부는 최근 기업인에 대한 처벌 수위가 과도하다는 인식하에 배임죄 폐지 등 경제형벌 합리화에 나선 상태다. 그러나 산업계는 지금 풀어야 할 문제가 배임죄뿐만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기업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인협회는 경제법률 형벌 조항을 전수조사한 결과 경제 관련 법 위반 행위는 총 8403개에 이른다고 10일 밝혔다. 특히 동일 행위에 대한 중복 제재를 큰 문제로 꼽았다. 8403개의 법 위반 행위 중 33.9%인 2850개가 이중, 삼중 이상의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었다. 일례로 공정거래법상 담합에 해당하는 정보 교환 행위뿐만 아니라 대리점법의 구입 강제 행위, 자본시장법의 부정거래 행위 등은 4중 또는 5중 제재를 받을 수 있는 행위에 해당한다. 재계 관계자는 “담합 행위는 반드시 엄중 처벌해야 할 불법 행위이지만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준법 조직을 체계적으로 갖추지 못해 미처 대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중소기업은 자칫 한 번의 실수로 ‘제재 폭탄’을 맞으면 하루아침에 기업이 간판을 내려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위반 정도에 비해 처벌이 과도한 경우도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 때문에 사업자들은 경미한 법 위반으로 언제라도 전과자가 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항상 안고 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장이 손님 편의를 위해 임의로 점포 앞 테라스를 만들거나 입구에 천막 지붕을 씌웠다가는 건축법상 ‘무허가 증축’으로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한경협은 “안전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 아닌데도 허가, 신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즉시 형사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또 화장품의 경우 내용물에 이상이 없더라도 라벨 등 외관이 훼손된 제품을 판매 또는 진열만 해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동일인(총수) 대상 자료 제출 의무와 관련한 처벌 조항 역시 시대에 안 맞는다고 지적되는 대표 규제다. 공정위는 매년 공시 대상 기업집단을 정하기 위해 동일인과 특수관계인 자가 관여한 기업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만약 자료를 제출하지 않거나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으면 제출 의무자는 최대 징역 2년 또는 벌금 1억5000만 원에 처할 수 있다. 기업들은 실무자의 업무 착오나 친족의 비협조로 의도치 않은 자료 누락이 발생할 수 있다며 형사 처벌은 지나치다고 주장한다. 한경협은 “자료 미제출과 같은 단순 절차상 위반은 과태료 등 행정 조치로 다뤄야 한다”고 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배임죄는 수만 가지 기업 규제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기업들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고 신생 기업들이 활발하게 생겨나도록 하기 위해 지금의 과잉 규제를 과감하게 완화하고 경영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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