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개의 말·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밀란 쿤데라 지음·김병욱 옮김/132쪽·1만5000원·민음사
이는 쿤데라의 유고 산문 2편을 묶은 이번 신간에서 소개하는 에피소드다. 11일 쿤데라 별세 2주기를 앞두고 출간됐다. 신간에는 정치적 이유로 조국 체코슬로바키아를 떠나 평생 타국에 살아야 했던 작가가 체코, 체코어, 체코 문화에 대해 품은 향수가 그지없이 담겼다.
첫 번째 산문 ‘89개의 말’은 쿤데라가 소설을 집필하고 번역하면서 단어 하나하나에 대해 사유한 ‘개인 사전’이다. ‘tre(존재)’라는 단어를 두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쓸 당시 ‘존재’라는 단어를 제목에서 빼라는 조언을 받았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이 체코 작가는 평생 자신의 책이 원래 쓰인 언어와는 다른 언어로 출간되는 것만 보았다. 1968년 러시아 침공 이후 그의 소설들이 조국에서 출간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 사전은 모든 단어를 주의 깊게 살필 수밖에 없었던 그의 이력의 반영인 셈이다.
광고 로드중
두 번째 산문 ‘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는 단행본에는 실린 적 없는 국내 초역의 글이라고 한다. 카프카, 하셰크, 차페크 등 문학 거성을 낳은 체코의 문화적 토양을 짚고, 체코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소련 전체주의와 유럽 열강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