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 화재 ‘비수급 빈곤층’의 비극… 딸 숨지고 아내-아들 중상 충격 아빠 “집 산후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져… 장시간 야간근무 자처, 가족 못구해” “한국, 서울 등 집 있으면 수급자 제외… 취약층 주거용 재산은 배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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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서울 은평구 녹번동 한 빌라에서 일어난 화재로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10대 소녀가 숨지고 가족인 10대 소년과 40대 어머니가 중상을 입었다. 가장인 아버지가 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밤까지 일을 나간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이들은 중증장애아동이 있는 차상위계층 가족이었지만, 정부로부터 월 10여만 원의 수당만 지원 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중증장애인 가정에 대한 정부 지원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중증장애아 가족, 월 17만 원 수당 전부
“애 엄마 손과 얼굴에 화상자국이 있더라고요. 애를 구하려고 한 것 같아요. 제가 있었으면 좀 나았을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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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가 이런 장시간 야간 근무를 자처한 이유는 그가 사실상 가족의 유일한 소득 원천이기 때문이다. 김 씨 가족이 정부로부터 받는 금전적 지원은 월 약 17만 원 수준의 장애아동수당뿐이다. 중위소득 32% 이하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 2025년 기준 월 최대 약 195만 원의 생계급여를 받지만, 김 씨 가족은 차상위계층이라 별도 생계급여를 받을 수 없었다. 혜택은 요금 감면, 물품 보급 등 간접 지원이 대부분이었다. 자가가 없으면 서울에 사는 4인 가족 기준 최대 월 50만 원 수준의 주거급여를 받는데, 김 씨는 자가가 있어 그마저도 대상이 아니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자가가 있는 경우 집 수선유지급여를 받을 수 있는데 집 노후도에 따라 3년에서 7년에 한 번 주어진다.
김 씨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데리고 이사 다니기 힘들어 빚을 내는 등 무리해서 집을 샀다고 했다. 집을 산 탓에 경제적으로 더욱 어려워졌지만, 맞벌이를 할 수도 없었다. 아내가 24시간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딸 곁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부부가) 하루에 많이 자야 2∼3시간 정도밖에 못 잤다”라며 “생계를 책임져야 하니 야간 근무를 자처했는데 그러던 중 이런 일이 생기니 힘이 빠진다”라고 말했다.
● “급여 기준 세분화해야”
전문가들은 복지제도 사각지대 탓에 생계가 어려운데도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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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동 가족은 이사가 어려운 탓에 무리해서 자가를 갖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역시 급여 기준에 고려되지 않았다. 허선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해외에는 일정 규모 이하의 주거용 집은 재산으로 치지 않는 국가들이 많다”며 “아무리 허름한 집이라도 서울 등 대도시에 집이 있는 경우라면 수급자가 되기 어려운 만큼, 장애인을 키우는 가정 등 취약계층의 주거용 재산은 (소득인정액에서) 제외하거나 완화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욱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의 경우 소득과 재산을 합쳐 소득 인정액을 구하는데, (수급자가 될 수 있는) 소득과 재산 기준선을 각각 세워 수급자를 결정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제언했다.
김민지 기자 minji@donga.com
방성은 기자 bbang@donga.com
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