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혁신스타트업 in 홍릉] 크리모 “스마트 토이, 교육에서 디지털 치료까지”

입력 | 2024-01-16 10:56:00


장난감은 아이들이 상상의 나래를 펴도록, 그래서 창의력을 개발하도록 돕는다. 장난감에 정보통신기술을 더하면 디지털 지식과 경험까지 가져다주는 학습 도구로 발전한다. 우리나라의 한 에듀테크 스타트업은 장난감에 정보통신기술과 의료계의 임상을 적용, 활용 범위를 디지털 학습 도구에서 심리치료 및 멘탈 케어 기술로까지 넓히려 한다. 홍릉강소특구와 함께 성장 중인 ‘크리모’다.

크리모를 이끄는 이석 대표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하 KIST)에서 20여 년 동안 센서 시스템을 연구 개발했다.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대학교로 연수를 떠난 그는 스마트폰을 이어 정보통신업계를 이끌 새로운 기술이 무엇인지 궁리했고, 그 중 하나가 스마트 토이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CES 2024에서 기술을 선보이는 이석 대표 / 출처=크리모


많은 사람들이 장난감 산업을 사양 산업으로 보고 이석 대표를 만류했다. 하지만, 이석 대표는 정보통신기술을 품은 스마트 토이가 새로운 시장을 만들 것으로 확신했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장난감, 세계 게임 업계를 휩쓸 만큼 풍부한 소프트웨어 역량을 가진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전달할 장난감, 나아가 감성과 문화 역량까지 가져다줄 장난감이 바로 그가 구상한 스마트 토이였다.

이석 대표는 곧바로 KIST의 젊은 연구원들과 연구를 시작했다. 단기간에 성과도 거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신산업 창조프로젝트 시범사업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정, 2년간 30억 원의 지원금을 받은 것. 이를 토대로 이석 대표와 크리모 임직원들은 2년간 연구해 스마트 토이 ‘STEAM 교구(제품명 ADDI)’와 ‘코딩 교육용 스마트 블록 기반 피지컬 학습 교구(제품명 인터코디)’를 각각 완성했다.

크리모 STEAM 교구 'ADDI' / 출처=크리모


크리모 STEAM 교구는 영유아의 창의력과 논리력을 높이는 제품이다. 레고 블록처럼 쌓거나 조립해 모양을 만드는데, 이들 블록에는 다이얼과 모터, 스피커와 스위치, 숫자와 문자 디스플레이, 발광 LED가 각각 장착된다. 옵션으로 바퀴와 충전기도 있다.

아이들은 크리모 STEAM 교구를 조립해 자동차나 전광판 등을 만든다. 스위치로 전원을 켜고 다이얼로 글자나 숫자를 바꾸는 것도 된다. 레고 블록과 호환되므로, 함께 사용해 아이들이 자신만의 블록이나 장난감을 만들도록 돕는다.

크리모 코딩 교육용 스마트 블록 기반 피지컬 학습 교구도 STEAM 교구처럼 스마트 블록을 쌓거나 조립, 사용자가 원하는대로 사물을 만들도록 돕는다. 다이얼과 모터, 스위치와 숫자 등 기본 블록뿐만 아니라 온습도나 조도 검출 블록, 마이크와 IR 수신 블록, 사이니지 블록과 가변저항 블록 등 더욱 강력한 기능을 지원한다.

크리모 코딩 교육용 스마트 블록 기반 피지컬 학습 교구 '인터코디' / 출처=크리모


이들 블록은 아두이노 보드와 연결, 사용자가 코딩한대로 움직인다. 역시 레고 블록과 호환되므로 선풍기나 사륜 자동차, 트리나 글자 광고판 등을 자유롭게 만들고 성능을 바꿀 수 있다. 크리모는 이 제품이 초중고등학생들의 소프트웨어 코딩 교육에 적합하다고 설명한다.

크리모는 이들 제품에 ‘무선 인터랙티브 스마트 블록’이라는 이름을 붙여 CES 2016에 출품, 좋은 평가를 받는다. 이 성과를 딛고 KIST의 기술 사업화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2017년 12월 법인을 세운다.

이석 대표는 우리나라의 에듀테크 부문에 스마트 토이를 보급하려고 다양한 활동을 벌인다. 하지만, 에듀테크 부문에 굳게 세워진 입시 사교육의 벽을 넘고, 새로운 부문인 스마트 토이를 보급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투자금 유치도 난항이었다. 이석 대표는 창업 3년간 스마트 토이 기술력을 다듬고 지분 구조를 조금씩 개선, 2021년 투자금 유치와 TIPS 선정이라는 성과를 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업 영역 ‘영유아 멘탈 케어’를 발견한다.

크리모가 디지털 치료제로 제작 중인 스마트 토이 ADDI Plus / 출처=크리모


크리모는 우연히 스마트 토이를 자폐 아동 치료 전문가 앞에서 시연했다. 그 전문가는 크리모의 기술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의 증상을 완화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홀트 강동 복지관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석 대표는 홀트 강동 복지관 담당 교사와 자폐 아동을 대상으로 한 스마트 토이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했다. 프로그램이 많은 인기를 모으자, 크리모는 자폐 아동의 사회성 향상 프로그램 ‘나랑같이 놀래?’로 고도화했다.

크리모와 홀트 강동 복지관은 나랑같이 놀래? 프로그램을 매주 수요일 12주 구성으로 개선, 상반기와 하반기에 진행했다. 이어 2년간 운영한 프로그램의 평가 결과와 성과를 들고 우리나라 자폐 아동 치료의 최고 권위자인 김붕년 서울대학교병원 교수를 찾았다. 김붕년 교수는 크리모의 기술과 성과를 칭찬하며 임상을 더해 체계적으로 개발하면 자폐 아동의 증상 완화에 매우 유익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공동 개발도 제안했다.

크리모가 디지털 치료제로 제작 중인 스마트 토이 Braille Plus / 출처=크리모


이를 토대로 크리모와 서울대학교병원은 2022년 ‘자페스펙트럼증상(Autism Spectrum Disorder, ASD) 완화를 위한 혼합형 디지털 치료제’ 개발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등장한 디지털 치료제는 거의 모두가 소프트웨어 기반이었다. 반면, 크리모의 혼합형 디지털 치료제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융합한 것이다. 이 기술의 성장 가능성을 눈여겨본 투자사로부터 추가 투자금을 받은 크리모는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2025년 6월 식약청 품목 허가를 받는 것이 목표다.

이석 대표는 창업 후 갖가지 어려움을 겪었지만, 아이들에게 세상에 없는 장난감을 전파하자는 목표 아래 우직하게 사업을 이어왔다고 한다. 크리모의 스마트 토이를 본 세계 곳곳의 장난감 기업이 개발이나 생산 협업을 제안했지만, 이석 대표는 이를 모두 거절했다. 크리모의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면서 필요한 곳에 필요한 제품을 공급하려는 의지였다. 자폐 아동을 위한 혼합 디지털 치료제 개발도 이 철학과 맞닿았다.

CES 2022에서 혁신상을 받은 크리모 전시관 / 출처=크리모


또 한 가지 그가 만들려던 것은 노년 창업, 오랜 경험과 다양한 기술을 쌓은 연구원들의 창업 성공 사례다. 이석 대표는 연구원 경력을 살려 사회의 혁신에 기여하자는 철학을 크리모의 창업 계기이자 성장 비결이라고 소개한다.

이들 철학은 속속 새로운 성과를 만들었다. 크리모는 2022년과 2023년, 두 차례에 걸쳐 CES 에듀테크 부문과 디지털 헬스케어 부문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각각 스마트 토이,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혼합 디지털 치료제를 앞세워서다. 연구원의 경력과 기술이 반영된, 세상에 없었던 장난감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것이다.

CES 2023에서 혁신상을 받은 크리모 전시관 / 출처=크리모


성과를 토대로 크리모는 도전 과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기술을 전파한다. 먼저 스마트 토이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강화해서 해외 후발 주자와 기술 격차를 더욱 벌린다. 아이들이 스마트 토이로 창의력을 개발하도록,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이 우리나라 곳곳에 혁신을 일으키도록 유도하는 것이 크리모의 목표다.

이후 스마트 토이를 디지털 치료제로 활용하는 연구에 박차를 가한다. 자폐스펙트럼증상 완화를 위한 혼합형 디지털 치료제의 의료기기 인증에 집중하면서, 인허가가 필요 없는 의료보조기기 스마트 토이를 곧 선보인다. CES 2024에 출품, 크리모에게 세 번째 혁신상을 가져다 준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블록의 상품화도 도전 과제다. 일반 아동뿐만 아니라 몸이 아픈 아동에게도 유용한 스마트 토이를 전달하려는 것 또한 크리모의 목표다.

2023년 서울시 행사 '약자와의 동행'에서 강연 중인 이석 대표 / 출처=크리모


이석 대표는 “스마트 토이 관련, 미국 특허 등록 4건을 포함해 30여 건의 특허를 등록 혹은 출원했다. 2년 안에 이 규모를 두 배로 늘려 업계에서 가장 우수한 지식재산권을 확보하고, 두뇌발달과 헬스케어 융합 기술을 고도화해 만든 디지털 치료제를 세계 시장에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IT동아 차주경 기자(racingca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