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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칼럼]‘묻지마 몰표’가 있는 한 괴담정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입력 | 2023-09-01 00:06:00

과학과 국제사회 공인 결론 다 뒤집는 野
선동 괴담으로 바다를 오염수 낙인찍어
지역·극단 이념 기반 몰표 행태가
무책임한 선동 괴담 세력 번식의 토양



이기홍 대기자


‘주홍글씨’로 유명한 19세기 미국 작가 너새니얼 호손의 소설 ‘일곱 박공의 집’을 읽었다.

17~19세기 미 동부 매사추세츠주가 무대다. 한 성실한 농부가 샘물이 솟는 땅을 개간했는데 지역 실권자인 핀천 대령이 빼앗으려고 농부를 마법사로 몰아세운다. 성직자 판사 등 지도층 인사들과 군중도 마법사 선동에 휩쓸리고 결국 농부는 다른 ‘마녀 용의자’들과 함께 처형당한다.

비단 소설 속 세계만이 아니다. 인류 역사 어느 시대에나 정치적·재물적 이익을 위해 괴담과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세력은 있었다. 중세의 마녀사냥, ‘시온 의정서’라는 가짜문서를 이용해 유대인 혐오를 부추긴 히틀러, 백 년 전 오늘 수많은 조선인을 학살한 간토대지진의 유언비어 유포자들….

숱한 무고한 희생자를 양산한 그 선동의 주역들 가운데 훗날 반성하고 사과하고 합당한 죄과를 받은 이들이 얼마나 될까. 선동에 휩쓸려 흥분하고 울부짖었던 군중들 가운데 부끄러워하고 반성한 이들은 얼마나 될까.

우리 사회에서는 지난 십수 년간 괴담 선동 세력이 면면도 바뀌지 않은 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젠 야당 대표가 아예 선봉에 선다.

이재명 대표는 그제 전남 무안에서 현장 최고위원회를 열고 “어민들은 바다에 나가는 게 공동묘지 가는 것 같다고 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만든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가 자신의 이름을 윤석열로 잘못 발음했나 싶었다.

어민이 말한 공동묘지가 ‘오염된 바다’를 뜻했다면 멀쩡한 우리 바다를 공동묘지처럼 죽은 바다로 인식되게 만든 장본인은 이 대표 본인이다. 국내외 과학자 99%와 국제기구, 미국 유럽 등 모든 선진세계가 안전하다고 하는데도 민주당은 ‘세슘 우럭’ 운운하며 우리 바다를 방사능 범벅이 될 바다로 몰아갔다.

이 대표는 ‘기준치 180배 세슘 우럭’의 실체를 정말로 몰랐을까.

그 우럭은 후쿠시마 인근 바다에서 정상적으로 자라다 어선에 잡힌 물고기가 아니다. 도쿄전력이 정기 모니터링을 위해 원전 바로 앞, 방파제로 막힌 내항에 쳐놓은 그물 안의 물고기다. ALPS로 처리된 바닷물 속이 아니라 12년 전 흘러나온 오염물질이 침전해 있는 가둬진 오염수에서 태어나 자란 물고기인 것이다.

어민이 말한 공동묘지가 ‘무너지는 수산업’, ‘위기에 빠진 어민생계’를 뜻했다면 그 묘지를 만든 주된 책임 역시 일본 못잖게 이 대표와 좌파단체들에 있다. 우리 바다를 어떤 수산물도 먹어서는 안 될 기피 대상으로 만든 불신조장 선동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이 “1+1을 100이라 주장하는 선동세력”을 비판한데 대해 “국민 80%를 셈도 못하는 미개인 취급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지적한 ‘1+1을 100이라 주장하는 세력’은 국민 전체가 아니라 ‘과학을 우롱하고 허위사실로 공포를 주입시키려는 소수의 세력들’을 지칭한다는 것은 문맥상 누구나 알 수 있다.

일본의 방류를 찜찜해하고 우려하는 국민의 마음과, 우리 바다가 핵물질과 세슘생선으로 뒤덮일 것이라는 괴담 유포 행위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먼 미래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가진 국민을 고의적으로 괴담을 유포하는 자신들과 동일시하는 것은 선동행각을 물타기 하려는 의도다.

이 대표는 “내가 대통령이라면 이렇게 저지할 수 있다”고 시나리오를 제시해 보라.

현실적으로 방류를 저지할 방법은 전쟁밖에 없다. 툭하면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를 말하는데 ICJ 재판은 분쟁 당사국 양측이 모두 동의해야 가능하다는 건 기초적 상식이다. 설령 일본이 회부에 동의하고 ICJ에서 방류 중지 판결이 나와도 이를 이행할 강제력은 군사력 동원 외엔 없다.

전쟁외의 유일한 방법은 일본과는 사실상 단교 상태로 대립하면서 미국 등 서방국의 방류 용인 입장을 바꾸는 전방위 외교전을 펼치는 것인데, 한미일 공조는 다 무너지고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IAEA라는 국제기구의 공인된 검증 결과조차 무시하는 우물안개구리, 즉 중국 러시아 북한과 함께 4인방으로 소외될 것이다.

이 대표가 대통령이라면 방류 저지는 이루지도 못하고 외교적으로는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하는 그런 선택을 할 것인가. 국가는 국제 사회에서 감당해야할 의무가 있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것을 부정하면 언제든지 국제적으로 왕따가 될 수 있다.

‘국민 80% 반대’론에도 맹점이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윤 대통령이 그렇게 당당하면 지금 당장 국민 앞에 서서 '나는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적극 찬성한다. 반대하는 미개한 국민과 맞서 싸울 것이다'라고 제대로 선전포고를 하라”고 비난했는데 사안의 성격을 왜곡한 주장이다.

어떻게 이 문제가 찬반의 이슈가 될 수 있는가. 일본이 오염수를 방류하는 게 우리에게 득이 될 게 뭐가 있다고 찬성할 사람이 있겠는가.

복도식 아파트에서 한 집이 커다란 맹견을 키우려 한다고 예를 들자. 나머지 주민들에게 찬반을 물어보면 누가 찬성하겠는가. 하지만 입마개를 철저히 채우고, 국가 공인훈련소에서 훈련 코스를 마쳤다고 하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겠다고 약속하는데 이웃들이 개 키우는 걸 강제로 저지할 합법적 수단은 없다.

이건 찬반이 아니라, 단체로 몰려가서 그 집 현관에 대못을 박을 것인지, 아니면 입마개·계단 이용 같은 약속이 지켜지는지 감시하면서 지켜볼 것인지의 선택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유독 한 주민은 “이제 맹견에 물려 아이들이 다 병원에 실려 가고, 개가 흘리는 침으로 복도고 아파트 앞길이고 다 광견병 바이러스 천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자기 아파트를 사람 살지 못할 곳으로 몰아간다.

좁은 아파트에서 맹견을 키우겠다는 결정에 다수 주민이 우려를 갖는 것과 아파트 천지가 광견병 천국이 될 것이라는 선동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즉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는 찬반이 아니라, 단교나 전쟁 같은 수단을 불사하고라도 저지할 것인지, 국제기구의 감시와 약속이 지켜지는 것을 전제로 용인하고 감시할 것인지 선택해야하는 사안인 것이다.

이 대표는 자신의 언행이 선동 괴담이 아니라 자신한다면 국회에서 양측 과학자들을 동원해 생방송으로 끝장토론을 벌이도록 해보라. 일주일이고 이 주일이고 토론하고 스크립트를 매일 배포해 국민들이 판단하게 하라.

민주당은 IAEA를 말로만 일본 앞잡이라 낙인찍지 말고 IAEA 본부를 찾아가 전문가들과 끝장 토론을 벌여 IAEA의 공정성이나 객관성 전문성에 진짜 문제가 있었는지 확인해 보라.

‘일곱 박공의 집’ 소설 속 핀천 대령은 마녀선동으로 빼앗은 땅에 거대한 집을 짓고 축하 파티를 하는 날 갑자기 피를 토하며 죽는다. 그의 후손들도 유전병처럼 같은 증세로 급사하고, 결국 억울하게 마법사로 몰려 죽은 농부의 후손이 땅과 조상의 명예를 되찾게 된다. 전형적인 권선징악이다.

현대 이전까지는 신의섭리에 따라 진실이 드러나고 선동자는 벌을 받는다는 정의의 승리, 권선징악의 믿음이 있었다. 현대에는 그 역할을 과학과 투표가 맡았다. 과학이 진실을 드러내고 괴담 선동자들은 선거에서 심판받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일부 선진국의 경우일 뿐이다. 선진국에선 괴담을 퍼뜨린 정치인이나 언론은 곧 몰락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아무리 괴담과 선동이 허위로 드러나도 몰표를 주는 묻지 마 지지 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묻지 마 몰표는 지역이나 극단적 이념을 기반으로 한다.

허위로 드러나도 부끄러워 할 필요 없고, 팥으로 메주를 쒔다고 해도 지지해 주니까 더 과격하고 더 선동적으로 치닫는다. 괴담 선동 정치를 번식시키는 이런 토양을 바꿀 뾰족한 해법도 보이지 않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