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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곳곳 ‘부호 문자’ 사용… 중국만이 한자의 기원 아냐[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입력 | 2023-08-31 23:36:00


중국 윈난성의 소수민족인 나시족은 지금도 동파문이라는 상형문자를 사용한다. 고대 그림 문자 형태를 온전히 유지하고 있는 이 동파문은 같은 상형문자인 한자의 기원을 연구하는 데 참고가 된다. 강인욱 교수 제공

《한자의 기원은 막연하게 신화 속의 인물로 황제의 사관인 창힐이 새 발자국의 모습을 보고 발견했다고만 알려져 왔다. 최근 중국 곳곳의 약 5000년 전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한자와 유사한 글자들이 발견되어서 그 시작이 더 오래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이 자신만의 최고 자산으로 내세우는 것과 달리 한자는 신석기시대에 동아시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지난 수천 년간 동아시아 문명 발전의 기틀이 되어 온 한자의 기원을 최근 고고학 자료로 살펴보자.》











‘최초의 한자’ 갑골문 전 글자 존재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한자의 기원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기록이 있다. 한나라 경제(景帝·기원전 157년∼기원전 141년 재위) 때에 공자 사당의 벽을 헐다가 공자가 벽에 넣은 예전 고문서를 발견했다. 그런데 그 글자가 마치 올챙이가 기어가는 듯이 쓰인 ‘과두문자’로 아무도 뜻을 몰랐다. 이후 공자의 후손 공안국이 이것을 풀어서 46권으로 정리한 ‘고문상서’를 펴냈다. 한나라 때에 진시황의 분서갱유 이후 유교가 부활하는 훈고학이 널리 퍼지면서 공자가 진시황의 출현과 분서를 예견했다는 전설이 곁들여져 지금도 널리 회자된다. 하지만 그 근거는 거의 없다. 지난 100여 년간 발굴을 한 결과 중국의 한자는 상나라 때부터 주나라를 거쳐서 지금까지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공자가 활동하기 1000년 전 상나라 때의 글자도 잘 읽는데 하물며 공자가 아무도 모르는 ‘올챙이 같은 문자’를 쓸 리 없다. 글자라는 것에 신성한 힘이 있다고 믿은 후대인들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흔히 최초의 한자라고 하면 떠오르는 상나라의 갑골문으로 1899년에 처음 발견되었다. 하지만 학자들은 갑골문이 한자의 기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갑골문에 쓰인 한문은 완벽한 문법이 갖추어진 완성된 글자였기 때문이다. 즉, 갑골문은 이미 글자가 도입된 이후 한참 지난 뒤에 등장한 것이다. 게다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갑골문보다 2000년 빠르게 이미 글자가 등장했으니 어딘가에 한자의 진짜 기원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자의 기원을 밝혀주는 ‘미싱링크’(기원을 찾는 데에 빠진 고리)는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신석기시대의 토기들에서 발견되었다. 1960년대 이후 중국 각 지역의 신석기시대 집자리에서 한자와 비슷한 글자가 새겨진 토기들이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황허 유역의 대표적인 신석기시대 양사오문화를 시작으로 중국 곳곳의 신석기시대 집자리에서는 수천 개의 부호가 발견되었다. 현재까지 발견된 것 중에 가장 빠른 것은 8000년 전의 것도 있다. 이 신석기시대의 토기문자는 지금의 한자나 이집트 상형문자와 매우 유사하다.

이 발견을 들어서 중국의 학자들은 한자의 기원을 중화문명의 유구함과 연결해 세계 다른 문명보다도 빠른 문자를 시작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토기에 쓰인 부호를 한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토기에 새겨진 글자는 마치 상표를 찍듯이 1, 2개만 있을 뿐 글자로 보기 어렵다. 글자와 부호(=이모티콘)의 차이는 바로 문법에 있다. 일정한 문법으로 글자들을 이어서 쓴 것이 발견되어야 비로소 글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어쨌든 한자는 창힐이 발명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음식을 저장하면서 자신의 소유와 수량을 표시하는 ‘이모티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신석기 유적에서도 글자 발견

산둥반도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딩궁문자’는 그림에 가깝던 문자가 한자로 바뀌어 가는 중간 단계를 보여 준다. 사진 출처 바이두백과

최근에는 산둥반도의 동이(東夷·한반도와는 다른 중국 동해안의 토착 세력)문화에서 한자가 시작되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1992년에 딩궁(丁公)이라는 유적에서 발굴된 ‘딩궁문자’인데, 마치 능란한 서예로 쓴 듯한 11자의 글자가 발견되었다. 딩궁문자는 갑골문보다 약 800년이나 빠른 것으로 신석기시대의 ‘이모티콘’ 같은 글자에서 한자로 바뀌는 주요한 증거로 본다. 이후 강수성과 같이 중국 동해안 일대의 4000년 전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도 또 다른 글자가 발견되고 있다.

약 4500년 전에 등장한 샤오허옌 문화 유적지에서 발굴된 토기 문자. 기하학적인 무늬이지만 한자와 비슷한 모습이다.강인욱 교수 제공

초기 글자의 흔적은 만주 일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훙산문화가 사라지고 약 4500년 전에 등장한 샤오허옌이라는 문화의 무덤을 발굴하니 함께 묻은 토기에서도 한자를 연상시키는 기하학 문자가 발견되었다. 무덤에 함께 넣는 토기라면 무언가 내세에서의 바람을 적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직 해독의 실마리는 전혀 없다. 그 이후 같은 지역의 4000년 전 샤자뎬 하층문화에서는 서예 붓글씨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무늬를 토기에 그린 것도 나왔다. 이렇듯 한자는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어느 한 군데에서 사용된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곳곳에서 신석기시대부터 부호 문자를 만드는 전통이 있었고, 상나라의 사람들은 그 글자를 종합하여 점괘를 기록하기 위한 갑골문으로 발달시킨 것이다. 지금도 예전의 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는 윈난과 쓰촨의 소수민족들은 한자와 비슷한 글자들을 사용하고 있다. 한자가 중국만의 문화가 아니라는 증거이다.

중국어와 한자는 다르다. 중국어는 수십 개의 방언과 심지어 완전히 다른 문법의 소수민족이 사용한다. 중국이 하나의 거대한 문명으로 남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그 다양한 사람들을 소통시키는 한자 체계의 유지가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한자가 모든 사람을 위한 소통 체계였던 것은 아니다. 같은 한자이지만 정작 상나라의 갑골문은 19세기 말에 발견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존재를 몰랐다. 상나라 시절에 극히 일부의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글자로 사용하다가 상나라가 멸망하며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사라진 것과 같은 이치이다.

반면에 모든 사람의 정보를 담아내는 글자는 살아남았다. 고대 근동의 수메르인들이 사용하던 쐐기문자(=설형문자)는 후에 알파벳으로 발전하여 지금도 세계 사람들의 주요한 글자로 남아있다. 한자는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달한 부호에서 기원해서 지금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글자로 살아남았다. 지식을 다양하게 담아내는 창고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수많은 민족과 왕조가 교체되고 발음은 서로 다르게 해도 한자라는 글자만은 생명력을 굳건히 유지해왔다.





한자에 담긴 동아시아 문화의 저력

21세기에 들어서서 한자의 존재는 위협받고 있다. 글자 대신에 이모티콘이나 이미지가 중요한 디지털 사회에서 한자는 매우 취약한 글자 체계이다. 사회가 변하면서 복잡한 글자를 멀리하는 경향은 이제 젊은 세대뿐 아니라 기성세대에서도 확연해지고 있다. 평생을 한자와 함께한 사람들도 컴퓨터의 등장으로 이제 한자를 손으로 쓰는 법을 잊어버리고 있다. 또한 한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글자라는 자부심과는 별도로 확장성에서 치명적 결함이 있다. 글자를 이해하기 어려워 많은 사람들은 난해하게 생각한다. 간편한 알파벳을 기반으로 하는 영어로 세계의 주도권을 잡은 유럽이나 미국과 다른 점이다.

그럼에도 한자는 우리가 지켜야 할 자산이다. 글자는 소통의 수단을 넘어서 인간이 다양한 정보를 담아두기 위하여 개발한 발명품으로 그 자체가 거대한 지식창고의 기능을 한다. 지난 5000년 한자의 기원과 발전은 바로 동아시아 고대 문화의 다양한 역사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과정이기도 했다. 한자의 소멸은 단순한 하나의 문화가 아니라 통째로 저장고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슷한 상황은 구소련권의 여러 나라에서 러시아어를 축출하면서 겪은 바 있다. 소련이 멸망하고 독립하며 러시아의 영향력을 경계하여 러시아어를 철폐했지만 그 결과는 엉뚱하게 전통과 정보의 단절로 이어졌다. 지난 100여 년간 모든 정보와 문서를 러시아어로 쌓아 두었는데,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로부터 점차 멀어지는 한자이지만 그 기원으로부터 차근히 밝히면서 한자가 가진 동아시아 문화의 저력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