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귀 교수, 에세이 2편 연달아 출간 여성 시인 작품들 쉽고 친절하게 소개… “인생 담긴 시 읽는 건 ‘자각’하는 과정 시 소개하는 일, 논문 쓰기만큼 즐거워… 원문 표현 최대한 살려 번역하려 애써”
서울 종로구 청계천에서 21일 미소짓는 정은귀 한국외국어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정 교수는 “시가 어렵다고들 하는데 시는 재밌다. 또 시는 정말로 힘이 된다”고 말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시를 읽는 건 ‘자각’하는 과정이에요. 반복되는 삶에서 우리가 바라보지 못한 것에 새롭게 눈을 뜨게 해주죠.”
정은귀 한국외국어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54)는 시에 대한 믿음을 간직한 문학소녀처럼 보였다.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21일 만난 정 교수는 “논문 쓰는 일만큼 시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글을 쓰는 일이 즐겁다”며 웃었다.
정 교수는 미국의 앤 섹스턴(1928∼1974), 영국의 크리스티나 로세티(1830∼1894) 등 해외 여성 시인의 시를 국내에 소개한 문학 번역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자작시를 낭송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미국 시인 어맨다 고먼(25)의 시집 ‘우리가 오르는 언덕’(은행나무·2021년), ‘불러줘 우리를, 우리 지닌 것으로’(은행나무·2022년)도 그가 번역했다. 정 교수는 “미국에서 공부할 때 많은 여성 시인의 작품을 읽으며 눈을 떴다”며 “한국 독자들이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영미 시인의 작품을 원한다는 걸 알아 번역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고 했다.
나를 기쁘게 하는 색깔
다시 시작하는 경이로운 순간들
번역할 때는 원문의 표현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애쓴다. 위에 소개한 글릭의 시 원문은 “I speak/because I am shattered.” 정 교수는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꽃의 마음이 담긴 원문의 표현을 오랜 고민 끝에 우리말로 옮겼다”고 했다.
정 교수가 좋은 시를 소개하고 해설하는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2000년 그가 미국 뉴욕주립대(버펄로) 현대미국시 박사 과정에 진학하기 위해 한국을 떠날 때 어머니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는 수필가 장영희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1952∼2009) 같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정 교수는 “23년 전 어머니의 말씀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했다”며 “83세인 어머니는 지금도 시를 매일 필사한다. 가끔 자신이 쓰신 시를 내게 보내오기도 한다”고 했다.
신간 ‘다시 시작하는…’에 2021년 서울시 시민대학에서 시민 여러 명이 함께 쓴 시 ‘엄마 이야기’를 소개한 것도 눈길이 간다. “엄마는 안전지대다/엄마는 선물이기도 아니기도 하다/엄마는 ‘하기 나름’이다/엄마는 핸폰이다”라는 시구에는 엄마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평범한 이들의 시각이 다양하게 담겼다. 정 교수는 “시를 쓰고 나누는 과정에서 모두가 자기만의 엄마를 새롭게 만났다”며 “시를 만나는 일은 소중하지만 잊고 있던 존재들을 다시 품고 응시하는 일”이라고 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그는 어머니가 쓴 시 ‘첫사랑’을 보여줬다. 정 교수의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를 첫사랑으로 묘사했다. “삶에 짜들고 힘겨웠을 때/어머니는 나에게서 떠나가셨다”(시 ‘첫사랑’ 중)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