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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 살 미군 사병에 국가기밀 줄줄이 샜다[횡설수설/송평인]

입력 | 2023-04-14 21:30:00


존 워커는 미군 역사상 최악의 스파이 중 하나로 꼽힌다. 그가 1966년 미국 핵잠수함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보고받는 노퍽 해군기지에서 통신병과 준위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그는 암호생성기 KL-47의 암호코드를 복사한 뒤 워싱턴에 있는 소련대사관을 찾아갔다. 이듬해에는 더 최신인 KW-7의 암호코드까지 빼돌렸다. 다시 이듬해 북한의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이 일어났다. 소련은 워커가 전해준 암호코드를 확인하기 위해 국가보안위원회(KGB) 팀을 북한으로 보내 푸에블로호의 암호기를 뜯어봤다.

▷미 공군 매사추세츠주 방위군 정보단 소속 일병 잭 테세이라가 한국과도 관련된 미국 정부의 기밀문건 유출 사건으로 13일 체포됐다. 이날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은 자동 소총으로 무장하고 장갑차까지 동원해 매사추세츠주 노스다이턴에 있는 테세이라의 자택을 급습해 그를 체포했다. FBI는 테세이라가 기밀문건 사진을 찍어 올릴 때 사진 속 배경에 반복적으로 찍힌 그의 자택 모습을 통해 신원을 포착했다.

▷워커는 부업으로 술집을 하다가 망해 돈이 궁해서 정보를 소련에 팔았다. 스파이들은 대개 돈이 궁하거나 이념에 경도돼 정보를 판다. 테세이라는 정보를 어디에 판 게 아니다. 성향도 총기를 애호하는 등 극우에 가깝다. FBI가 더 수사해봐야 정확한 동기가 나오겠지만 일단은 그가 온라인 채팅방에서 ‘OG’라고 불리는 방장 역할을 하면서 “하루 중 일부를 정부 컴퓨터 네트워크에 보관된 기밀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보안시설에서 보낸다”며 과시용으로 올린 문건이 채팅방의 구성원을 통해 흘러 나간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일병에 불과한 21세 젊은이가 어떻게 전쟁을 유발할 수도 있는 1급 기밀을 다룰 수 있었는지 한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가 그렇지만 특정 계급 이하는 최고 등급 기밀에 대한 접근이 제한돼 있다. 미 국방부의 한 전직 직원은 CNN에서 “장군과 대령은 서류를 좋아한다. 돋보기를 끼고 더 자세히 보고 싶어 하기 때문에 프린트하게 한다”고 말했다. 프린트하는 과정에서 사병들에 의해 기밀문건이 샜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미국이 악의적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행동은 안 한 것 같다”고 말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한국의 고위 당국자는 도청은 없었다고 부인하지만 순순히 믿기 어렵다. 첩보 활동은 동기에 따라 좋고 나쁜 게 아니라 들키는 것 자체가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악이다. 한국에서 생산된 포탄이 미국에 수출됐다가 우크라이나에 지원되는 사안으로 한국이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미국에 엄중히 항의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