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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유재동]‘월가의 황제’도 울고 갈 한국 금융의 인사 구태

입력 | 2023-01-28 03:00:00

유재동 경제부 차장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모건스탠리의 제임스 고먼,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브라이언 모이니핸은 미국 월가를 호령하는 트로이카(삼두마차)다. 모두 60대 중반의 나이에 수천만 달러의 고연봉을 받으며 직원 10만∼20만 명의 글로벌 금융회사를 이끌고 있다. 이들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최고의 자리에서 벌써 15년 안팎 장기 집권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후계자로 거론되는 사람들은 많았다. 하지만 유력 후보들은 자기 차례를 기다리지 못해 다른 회사로 떠났거나 너무 나이가 들며 탈락했다. 이들의 임기는 요즘도 언론의 큰 관심사다. 고먼은 최근 다보스포럼에서 이에 대한 질문에 “(언젠가는) 물러날 것이다. 죽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진 않겠다”고 말했다. 물론 그 ‘언젠가’가 언제가 될지는 아직 기약이 없다.

당연히 논란과 뒷말이 생길 수밖에 없다. 매년 천문학적 연봉과 보너스를 챙겨간다는 대중의 비판과 함께, 막강한 금융 권력으로 시장은 물론이고 워싱턴 정가에까지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최고경영자(CEO)에 이사회 의장까지 겸직하는 이들은 회사 내부에서도 존재감이 너무 커져 마땅히 견제할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 같았으면 당장에 금융당국이 뛰어들어 이들을 몇 번이고 자리에서 끌어내렸겠지만 미국에선 그런 종류의 인사 개입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러나 월가의 인사 관행은 애초에 우리나라와 수평 비교하긴 어려운 측면이 많다. 미국은 철저히 성과와 실적을 바탕으로 이사회가 CEO의 진퇴를 결정하고 회사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한 사람에게 10년, 20년을 맡긴다 한들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이먼과 고먼, 모이니핸은 모두 CEO 취임 이후 탄탄한 실적 상승을 발판으로 회사 주가를 2, 3배 이상 높였다. 선제적 인수합병과 구조조정으로 금융위기 같은 거대한 위협을 기회로 바꿔낸 것도 이들의 몫이었다. 한국은 다르다. 당국이 만들어낸 규제와 독과점의 울타리 안에서 안전한 이자 장사로 수익을 내는 우리 금융사들의 경우 이사회나 주주는 허수아비에 가깝고 사실상 당국이 인사 실권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에선 금융당국이 금융지주 회장들의 연임을 저지하고 낙하산을 내려보내려 한다는 의혹으로 또다시 관치 논란이 불붙고 있다. 은행 간판만 바꿔서 거의 매년 반복되는 이런 인사 구태는 우리 금융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치유하는 게 얼마나 요원한지를 일깨워 준다. ‘땅 짚고 헤엄치기’식 실적 쌓기를 내세워 주인 없는 회사에서 장기 집권을 하려는 개인의 욕심과 그 자리를 놓고 서로를 물고 뜯는 파벌 싸움, 막강한 규제 권한을 무기로 입맛에 맞는 인사를 내리꽂으려는 당국 및 정치권이 합작한 이 저질 드라마는 시대가 변해도 도무지 막을 내릴 줄을 모른다. 지금처럼 본연의 실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지 않고 극한의 권력 투쟁과 자리다툼만 일삼는다면 우리 금융은 혁신은커녕 앞으로 한 발짝도 더 나가지 못할 것이다. 제아무리 ‘월가의 황제’라 불리는 다이먼이라도 만약 이런 한국에서 금융업을 했다면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었을까 하는 상상을 가끔 해본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