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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걸어잠근 사람들 두드리고 또 두드려요”

입력 | 2023-01-21 03:00:00

[위클리 리포트] 위기가구 비극 막으려 발로 뛰는 통합사례관리사
재작년 사망 31만명, 3378명 고독사
매일 어둠을 걷어내는 사람들



한 통합사례관리사가 위기가구 어르신과 손을 포개고 있는 모습. 한국사회보장정보원 제공


경북 봉화군청의 통합사례관리사 김안숙 씨(51)가 70대 A 할아버지를 만난 건 2021년 3월. 주변 이웃으로부터 ‘저러다 돌아가실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서다. 오랜 시간 기본적인 식사와 위생 관리 등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할아버지는 당장 건강이 위험한 상태였다. 급히 할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찾았지만 그가 완강하게 입원을 거절하는 바람에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 김 씨는 한 달 가까이 할아버지의 집을 찾아 매일 끼니를 챙기고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 동시에 그를 도울 방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선 할아버지를 위한 장기요양 서비스를 신청하려고 했다. 주변인과 연락을 모두 끊은 상황이라 보호자의 동의를 받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쓰레기더미 속에서 발견한 두꺼운 전화번호부.

전화번호부 맨 뒷장에는 할아버지와 같은 성을 가진 이들의 이름과 연락처가 여럿 적혀 있었다. 직감적으로 할아버지의 가족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차례로 한 명씩 전화를 돌렸다.

“가족들에게 말했어요. ‘할아버지를 책임지라고 하지 않겠다. 다만 할아버지가 나라의 도움을 받으려면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다. 그것만 해 달라’고요. 연락이 끊긴 지 워낙 오래돼서 처음에는 전화를 끊어 버리거나 거부감을 보였습니다.”




도와주겠다는 말 대신 “밖에 꽃이 예뻐요”… 그렇게 마음 열어





그런 가족의 마음을 연 것도 김 씨였다. 할아버지 상태를 설명하고 사진도 보냈더니 ‘미안하고 부끄럽다’며 연락이 왔다. 할아버지가 살아온 과거도 듣게 됐다.

사업 실패와 두 번의 이혼을 겪고 지칠 대로 지친 할아버지는 2004년 아무런 연고가 없는 경북 봉화군을 찾았다고 한다. 가족과 친구 등 모두와 연락을 끊은 상태였다. 누군가 자기를 알아보는 것도, 관심을 갖는 것도 싫었던 그는 집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게 벽돌로 담을 쌓았다. 이웃과도 교류하지 않았다. 그렇게 17년 동안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경북 포항에서 한 통합사례관리사(오른쪽)가 어르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통합사례관리사는 빈곤과 질병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위기가구 중에서도 ‘고난도’ 위기가구를 담당한다. 고난도 위기가구는 대부분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 이들이다. 전국 약 900명의 통합사례관리사들은 이들에게 알맞는 복지, 주거, 고용, 법률 서비스 등을 연계해 사회와 다시 연결시키려 하고 있다. 한국사회보장정보원 제공 

● 마음의 문, 두드리고 또 두드리면
김 씨가 2021년 할아버지를 만났을 때는 연탄집게도 잡지 못할 정도로 심한 류머티스 관절염에 시달리고 있었다. 은둔생활이 길어질수록 점점 쇠약해져 갔다. 연탄을 갈지 못하니 추운 겨울도 작은 난방기구에 의지해 보낼 수밖에 없었다. 기력이 없어 미처 치우지 못한 생활쓰레기가 집 안 가득 쌓여 갔다.

직접 할아버지를 만난 가족들은 너무나 변해 버린 그의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 가족들이 함께 설득에 나서면서 할아버지는 병원 진료도 받기 시작했다.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집에 가득 쌓여 있던 쓰레기도 말끔히 치웠다. 낡은 주방과 장판도 모두 수리했다. 장기요양등급판정을 받아 요양보호사의 재가 서비스도 받을 수 있게 됐다. 매일 요양보호사가 찾아와 4시간씩 돌봄을 제공한다. 연락이 끊겼던 가족들은 한 달에 한 번 할아버지를 찾아와 이발과 목욕을 시켜준다.

김 씨와 같은 통합사례관리사는 빈곤과 질병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위기가구 중에서도 이 할아버지처럼 ‘고난도’ 위기가구를 담당하는 이들이다. 대부분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 이들이다. 주로 지방자치단체에 고용된 약 900명의 통합사례관리사들은 이들에게 알맞는 복지, 주거, 고용, 법률 서비스 등을 연계해 제공한다.
● ‘죽고 싶다’는 구조 요청 신호
A 할아버지처럼 긴 시간 잠겨 있던 마음의 문을 여는 일은 쉽지 않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설득이라는 ‘열쇠’로는 열리지 않는다. 잠긴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려야 한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던 60대 여성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집에 주파수가 들어와 자꾸만 몸이 아프다’는 망상에 시달리던 이 여성은 집 안 창문에 이불을 붙여 한 줄기의 빛도 들어오지 않게 만들었다. 집 외부 벽에도 이불을 둘러 놓을 정도였다.

김 씨는 매주 이 여성을 찾아갔다. 문을 열어 주지 않아 만날 수는 없었지만, 김 씨는 현관문 앞에 요구르트와 떡 같은 음식을 놓고 돌아왔다. ‘군청에서 일하는 통합사례관리사 김안숙입니다. 만나 뵙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라고 적은 메모도 함께 남겼다. 혹시나 부담을 느낄 것 같아 ‘도와드리겠다’는 말은 쓰지 않았다. 대신 ‘바깥에는 꽃이 펴 풍경이 예쁘다’와 같은 가벼운 인삿말을 적었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군청으로 김 씨를 찾는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였다.

“도저히 힘들어서 못 살겠으니 아들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하겠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그 말이 ‘죽고 싶다’는 말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도움을 받고 싶어서 마음을 여는 신호라고 느꼈어요.”

정신건강 전문가와 함께 두 차례 더 그녀의 집을 찾아갔을 때, 드디어 문이 열렸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휴대전화 불빛을 비춰 그녀의 얼굴을 처음 봤다. 심하게 낡은 집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판단해 이사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등 새 삶을 함께 설계했다. 새집으로 이사를 간 그녀가 ‘고맙다’는 인사와 직접 담근 열무김치를 건넸을 때, 김 씨는 결국 울어 버렸다.
● ‘자발적 고립’ 선택하는 이유는
통합사례관리사들은 단순히 위기가구가 받을 수 있는 복지 제도를 안내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이 일상을 회복하고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그들의 곁을 지킨다.

17일 서울 서초구의 통합사례관리사인 양선정 씨(47)는 한 40대 남성을 만나기 위해 서울의 B종합병원을 찾았다. 알코올 사용 장애가 있는 이 남성은 급성간염으로 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다음 날 다른 병원 정신과 폐쇄병동으로의 전원을 앞두고 있었다. 양 씨는 남성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며 전원을 위한 절차를 안내했다. 그는 “너무 죄송해요”라고 말했고 양 씨는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가 죄송해요. 선생님, 앞으로 스스로를 위해서 노력하시면 돼요.”

양 씨가 이 남성을 처음 만난 건 지난해 11월, 남성이 살던 고시원장의 신고가 시작이었다. 당시 남성은 약 20일 동안 끼니를 거르고 술만 마셔 의식 자체가 흐릿한 상태에서 환시와 환청을 호소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필요한 치료를 받고 퇴원한 뒤 남성은 정신과 치료와 자활 상담 참여를 약속했지만 이달 초부터 연락이 닿지 않았다. 양 씨가 다시 찾아간 고시원에서 그는 또다시 홀로 술을 마시고 거의 의식이 없는 채로 발견됐다. 그렇게 다시 B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이다.

이 남성처럼 위기 상황에서도 주변의 도움을 거부하는 이들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정세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그 이면에는 단절된 관계와 사회에 대한 냉소,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주변에 작은 도움을 요청했다가 거절을 당해 위축되거나 모멸감을 느꼈던 경험이 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부연구위원은 “단순히 복지 급여만 제공하면 된다는 접근으로는 이들을 사회에 연결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업 실패나 가족의 사망, 질병 등을 갑작스럽게 겪은 이들은 도움을 더 쉽게 요청하지 못한다고 한다. 과거와 크게 달라진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를 괴로워하기 때문이다. 경기 수원시의 통합사례관리사 김효정 씨(50)는 “갑자기 벼랑 끝에 서게 된 분들 중에는 자신이 복지 서비스를 받는 대상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분이 많다”며 “도움을 받는 방법을 모를 뿐만 아니라 ‘내가 어떻게 나라의 도움을 받냐’며 창피해하고 수치스러워한다”고 말했다.
● “나를 위해 울어준 유일한 사람”
사실 통합사례관리사들의 고충은 적지 않다. 죽음의 위험에 노출된 이들을 매일 만나는 만큼 심리적인 부담이 크다. 양 씨는 위기가구의 고독사 현장을 목격한 뒤 시간이 지날수록 잔상이 남아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양 씨는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한다는 건 저희에게도 힘든 일”이라며 “고시원 문을 처음 열 때가 가장 무섭다”고 말했다. 이처럼 충격적인 상황을 접한 뒤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끝내 일을 그만두는 통합사례관리사들도 있다.

그에 비해 처우도 열악하고 인력도 충분치 않다. 2021년 홍선미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진행한 보건복지부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는 최소 1500명에서 최대 3800명의 통합사례관리사가 필요하다. 복지 수요를 고려해 적정 인원을 추산한 결과다. 지금 인원(890명)이 1.6∼4배로 늘어야 한다는 얘기다.

경기 광명시의 통합사례관리사 이정희 씨가 위기가구 상담을 하고 있다. 인력도, 처우도 넉넉하진 않지만 통합사례관리사들은 위기가구를 발굴하고 그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이정희 씨 제공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사례관리사들이 계속해서 일하는 원동력은 단 한 가지. ‘위기가구가 변화하는 모습’이다. ‘나를 위해 울어준 사람은 선생님뿐이었다’,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지만 선생님이 생각나서 다시 한번 살아야겠고 생각했다’. 경기 광명시의 통합사례관리사 이정희 씨(43)는 변화한 이들이 건넸던 한마디 한마디를 늘 마음에 품고 일한다. 정말 도울 수 있을까 회의가 찾아와도 버틸 수 있는 이유다.

양 씨 역시 마찬가지다. 양 씨는 2년 전 서초구청 홈페이지 ‘칭찬합시다’ 코너에 올라온 글을 잊지 못한다. 어머니와 함께 노숙 생활을 하던 중 양 씨를 만나 도움을 받게 된 한 여성은 이렇게 적었다.

‘저희 모녀에게는 희망이 없었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저희 모녀의 불행과 고통을 본인의 일처럼 생각하고 도와주신 분이 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저희 모녀의 삶은 어땠을지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선생님을 생각하며 저희 모녀도 씩씩하게 버티겠습니다.’
● 누군가는 매일 어둠을 걷어낸다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 이들이 끝내 도움을 받지 못하면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복지부에 따르면 2021년 국내 사망자는 31만7680명이고 이 중 고독사 사망자가 3378명이다. 사망자 100명 중 1명꼴이다.

고독사 사망자는 2017년 2412명에서 2019년 2949명 등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고독사라고 하면 흔히 고령의 노인을 떠올리기 쉽지만 오히려 50, 60대가 고위험군이다. 2021년 전체 고독사의 58.6%가 이 연령대에서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한국 사회가 자발적 고립자들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홍 교수는 “지금까지는 신청주의(본인이나 가족이 신청해야만 혜택을 주는 것) 원칙에 따라 직접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기존 제도하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두 개의 지원을 일회성으로 제공해서는 이들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 낼 수 없다.

수원 세 모녀 사건, 창신동 모자 사건, 송파 세 모녀 사건…. 사건이 발생한 지역과 세상을 떠난 이들만 바뀔 뿐 복지 사각지대의 비극은 계속해서 되풀이되고 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복지 사각지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묘수는 없다고 말한다. 복지 제도의 보완과 이웃의 관심 확대 등 사회 분위기 개선이 함께 맞물릴 때 조금씩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지운 채 고립을 선택한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완벽하고 빠른 해결책이 없다고 해서 희망까지 없는 건 아니다. 어둠을 걷어낸 자리에 다시 어둠이 드리워도, 누군가는 매일 부지런히 어둠을 걷어내고 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