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약체 정권 인정하고 ‘심적 쇄신’ 나서길 정권 망쳤다간 2년 후 黨 간판 내려야 할 수도
정용관 논설위원
윤석열 정권이 심각한 난관에 처한 것 같다. 진짜 위기는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윤 대통령은 내심 답답해하는 듯하다. 망가진 한미 동맹을 빠르게 복원했고, 한일 관계 재정립에도 나섰다. 대북 안보 태세도 강화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을 천명했다. 나라의 기본(基本)을 바로 세우려 나름 애를 쓴 거 같은데…. 지지율은 머리가 하얘질 만큼 추락하고 있다.
정치 영역에선 뭘 하느냐와 함께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하다. 경제 위기의 짙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데 뭔가 미덥지 않다. 지금 당장, 또 향후 5년 뭘 어떻게 해서 국민을 먹고살게 하겠다는 건지의 비전도 잘 보이지 않는다. 검찰 출신이나 지인 인사만 잔상에 남았다. 노동계에 틈을 보이면서 특유의 강단 이미지가 훼손됐다. 법과 원칙, 능력주의를 내세운 정권의 아이러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윤 대통령은 ‘톤앤매너’, 즉 말투와 태도에서 쓸데없이 점수를 까먹었다. 정제되지 않은 발언, “그게 뭐 어때서?” 하는 식의 반문 화법은 솔직하다기보다는 진중하지 않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요즘엔 도어스테핑 실수를 줄이려 하는 것 같다. 김건희 여사도 2주일째 언론 노출을 피하고 있다.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겠지만 허전함을 지울 수 없다. 그런 변화가 단기 처방일지는 모르나 지지율을 반등시키고 정국을 주도해 나갈 방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탄핵 정당이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은 듯하다. 윤핵관들은 원톱이니 투톱이니, 형님이니 동생이니 하며 싸우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잘들 해봐라” 하는 듯한 태도다. 정권 망쳤다간 2년 후 총선에서 당 간판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는데 눈앞의 당권 내전에 여념이 없다. 대권 욕심이 없는 현역 중진이든, 대통령과 소통이 가능하고 정치력도 검증된 외부 인사든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는 게 현실적 시나리오일 순 있지만 다들 각자도생에 바쁘니…. 이 대표는 ‘통 큰 결단’을 내리고 윤핵관도 백의종군 태도를 보여야 한다. 어차피 ‘파생 권력’ 아닌가.
꽉 막혔다. 윤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쓸 수 있는 묘책은 별다른 게 없어 보인다. 인적 쇄신이 어려우면 ‘심적(心的) 쇄신’으로 가야 한다. 그 출발은 대외 환경이든 지지 기반이든 국회 의석 분포든 역대 최약체 정권임을 인정하고 ‘낮은 자세’로 국민에게 다가서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집권 초 기세등등했던 이명박 정권 사례를 보라. 둑이 한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다. 공권력도 무용지물이었다. 모종의 사태라도 벌어지면 어쩔 건가. 집권세력이 혼연일체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장관은 발에 땀이 나게 현장을 뛰고, 의원들도 윤핵관 눈치만 볼 게 아니라 국민의 가려운 곳을 파고드는 절박감을 보일 때다. 윤 대통령은 “지지율 0%, 1%가 나와도 바로잡아야 할 것은 바로잡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지금은 99% 민생 챙기기에 나서는 모습을 먼저 보일 때다. 취임 100일에 즈음한 8·15 경축사를 제2의 취임사라 여기고 윤석열 정부의 새 출발을 알려야 한다. 그게 윤 대통령이 성공의 길로 가는 좁은 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