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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준이, 윷놀이 등 변형해 창의성 키워… 자유롭게 놔뒀다”

입력 | 2022-07-07 03:00:00

[‘수학 노벨상’ 한국계 첫 수상]
‘필즈상’ 허준이 교수 키운 부친-지도교수 인터뷰
부친 허명회 고려대 명예교수




사람이 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그의 과거 현재 미래 즉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라는 시(詩)가 있다.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39·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5일 한국계로는 처음으로 수학계 노벨상인 ‘필즈상’을 받은 데에는 자율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부모, 공동연구를 통해 수학의 즐거움을 알려준 동료들, 관심 갖는 연구의 길을 걷도록 독려해준 스승, 그리고 ‘엄청난 우연과 직관과 노력’의 영향이 작용했다. 허 교수의 아버지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와 지도교수였던 김영훈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유치원 참관수업에 갔는데 다른 아이들은 글쓰기를 했더라고요. 그런데 준이는 (한글을 잘 몰라) 이름만 써 놓고 있었어요. ‘이’는 ‘ㅣㅇ’로 써 놓고…. 여러 번 가르쳐줬는데 잘 모르더라고요.”

한국계 최초로 수학계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39)의 아버지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67·사진)는 6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준이는 어릴 적) 어수룩한 편이었다. 그래서 좀 답답했다”고 회상했다.
○ “수학 직접 가르쳤는데 못 따라와”
허 명예교수는 한때 아들을 영재로 키우겠다는 욕심을 낸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저도 수학 전공인 만큼 중학교 때 직접 데리고 수학을 교육시킨 적이 있다”며 “과학고등학교에 가고 국제올림피아드에서 메달을 따는 것에 욕심을 냈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은 기대했던 만큼 따라오지 못했다. 허 명예교수는 “아버지한테 수학을 잘하는 인상을 줘야 하는데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에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나 싶다. 심리적 반발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 대신 아들은 창의적인 면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허 명예교수는 “윷놀이나 사다리타기 같은 게임을 다양한 버전으로 만들어 변형시키면서 놀았는데 준이는 창의적으로 변형시키는 습관을 보였다”고 했다. 버섯을 수집·촬영해 분류하는 등의 ‘프로젝트’에서도 재미를 느끼는 모습이었다. 허 교수는 “아들이 창의적으로 놀도록 더 권하고,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밝혔다.

허준이 교수는 중학생 시절에는 글쓰기에 빠져 지냈다. 허 교수는 “아들은 시를 잘 썼고, 소설도 썼다”며 “아내(이인영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명예교수)의 전공 분야인만큼 함께 보며 칭찬이나 비판을 했다”고 돌이켰다.
○ “자퇴도 새 아이디어, 아이를 자유롭게 놔줘야”
허준이 교수가 상문고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치르겠다고 했을 때도 허 명예교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했다. 허 명예교수는 “준이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수업) 50분, (쉬는 시간) 10분을 반복하는 것을 진득하게 참아내지 못했다. 가혹하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기에 집에서 공부하는 것도 새로운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자퇴한 아들은 당시 집에서 멀지 않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독서를 많이 했는데 이는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허 명예교수는 어떻게 하면 허준이 교수 같은 자녀를 키울 수 있느냐는 질문에 “상당히 자유롭게 놔 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저는 절대적으로 사교육에 반대한다. 선행학습도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는 다양성이 인간의 가치를 부여할 것인 만큼 일타강사의 명료하고 효율적인 일방통행식 강의 대신 유연하고 자유롭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허 명예교수는 선배 수학자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자 “저도 열심히는 했지만 준이 같은 경지에 이르지 못한 만큼 선배로선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다만 “(아버지로서는) 지금까지처럼 일상 속에서 꾸준히 정진하고 두 아이도 잘 키우는 균형잡힌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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