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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한상준]없는 가족도 만들어내는 제1야당의 실력

입력 | 2022-05-12 03:00:00

한상준 정치부 차장


“내 딸이 이모가 있었어…?”

큰 관심 속에 열린 9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 후보자가 가장 당황한 모습을 보인 건 이 장면이었다.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은 한 후보자 딸의 논문에 대해 물어보던 중 “(후보자 딸이) 이 논문을 1저자로 썼다. (어머니의 자매인) 이모하고 같이”라고 추궁했다. 그러자 한 후보자는 “누구와 같이 썼다고요? 제 딸이요?”라며 화들짝 놀랐다. 한 후보자의 눈동자는 말 그대로 격하게 흔들렸다.

아마 법무부 참모들이 빼곡하게 준비한 예상 질문지에도 딸의 이모와 관련된 내용은 없었을 것이다. 김 의원이 익명을 뜻하는 ‘이 모(某)’를 어머니의 여자 형제인 이모라고 해석하고 몰아세웠기 때문이다.

한 후보자에 대해 일찌감치 ‘부적격’ 판정을 내린 민주당이 벼르고 벼른 한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이처럼 실소의 연속이었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한 후보자가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때 부인 김건희 여사와 연락한 사실을 지적하며 “왜 비서실장과 통화하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한 후보자의 답변은 “(검찰총장은) 비서실장이 따로 있지 않다”였다.

청문회 전, 민주당 관계자는 “한 후보자 청문회가 걱정이다. 섣부른 공격으로 역공을 당해 (윤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빌미만 주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의 걱정은 현실이 됐다. 민주당 동료 의원조차 “완패다 완패. 도대체 (민주당 의원들이) 뭘 준비했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었다. 윤 대통령이 한 후보자 지명을 발표한 것은 지난달 13일. 게다가 한 후보자 청문회는 당초 4일 열릴 예정이었지만 더 늦춰졌다. “자료 제출이 불성실했다”고 탓할 수도 있겠지만 저 질문들은 불성실한 자료 제출과 하등 상관이 없는 내용이었다.

대통령, 여당과 달리 인사권도, 정책 결정권도 없는 제1야당의 무기는 실력이다. 송곳 같은 지적과 매서운 추궁으로 집권 여당의 문제점을 짚어내고, 견제해야 한다. 지적과 추궁이 타당하고 합리적일 때 여론도 움직인다. 여론이 움직이면 기세등등한 집권 여당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야당 예비고사’와 같았던 인사청문회 국면에서 보인 민주당의 모습은 과연 어땠나.

한 후보자에게 ‘소통령’ 딱지를 붙인 민주당은 청문회에서 “왜 소통령인지”를 국민에게 보여줘야 했다. 사실상 검찰총장 집무실로 변모하고 있는 대통령실 인적 구성의 문제점도 부각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못 했다. 야당이 대통령의 인사권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전장(戰場)인 인사청문회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앞으로도 168석의 힘만 믿고 무조건 윽박지르고 반대하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제1야당이 무능해지면 신나는 건 집권 여당뿐이다. 집권 세력이 견제 없이 막무가내로 나간다면 국가 전체로도 불행이다. 2024년 총선까지 남은 2년, 과연 민주당은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가. 


한상준 정치부 차장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