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접종 여부 몰라 마스크 계속 착용 ‘백신 강국’ 美의 다음 과제는 신뢰사회 회복
유재동 뉴욕 특파원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다. 그동안 마스크를 마치 속옷처럼 여기고 착용해온 수많은 미국인이 상당한 혼란을 느낀다. 막상 쓰라고 할 때는 그렇게도 말을 안 듣던 사람들이 이제는 벗어도 된다는데 또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다. 마스크 ‘탈의’에 가장 보수적인 사람들은 아무래도 마트 계산원이나 의료진 같은 대면 접촉 근로자들이다. 한 동네 상점은 ‘No mask, No entry, No exception’(마스크 안 쓰면 예외 없이 출입금지)이라는 경고 문구를 1년 넘게 지금까지도 내걸고 있다. 맨해튼 거리에 나가 봐도 ‘백신을 맞았으면 맨얼굴로 들어와도 된다’고 써 붙인 가게는 쉽게 찾기 힘들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이런 상황을 ‘새로운 아너 시스템(honor system)’이라고 규정했다. 일종의 무감독 시험 같은 것인데, 사회 구성원들이 알아서 규칙을 지킨다고 전제하는 자율 규제를 뜻한다. ‘백신 접종자는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는 당국의 지침도 ‘백신 접종자만 마스크를 벗을 것’이라는 믿음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그게 지켜지느냐다. 사회 구성원 간 신뢰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 미국은 작년에도 마스크를 쓰는 자와 안 쓰는 자로 나라 전체가 두 쪽으로 갈라진 기억을 갖고 있다. ‘노 마스크’ 이웃을 믿도록 강요하는 이번 지침은 그래서 더욱 논란이 많다.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규제를 없애면 무책임하게 마스크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들만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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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미국의 마스크 ‘해제령’은 팬데믹에서 먼저 승기를 잡았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집단면역의 순간을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많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정치적 결단을 내린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백신 접종을 거부·유보하는 비율이 30∼40%에 이르고, 국민들의 마스크 피로도가 거의 한계치에 다다른 한국도 언젠가는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될지 모른다. 그때가 오면 우리는 백신을 맞았다고 마음 놓고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까. 불신과 괴담, 편 가르기를 멈추고 성숙한 집단의 의지를 발휘할 수 있을지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또 한 번 묻고 있다.
유재동 뉴욕 특파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