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성 작가 ‘수공 애니메이션’ 오일파스텔화 스캔 후 연결해 구성 “기약 없어진 풍경 향한 갈망 담아”
이우성 작가의 ‘어쩌면 우리에게 더 멋진 일이 있을지도 몰라’. 이 작가는 “바람과 시간의 중첩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후속 영상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산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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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필름 영사를 통해 셀 애니메이션을 만날 기회를 얻기 어렵다. ‘나무를 심은 사람’(1987년)처럼 널리 알려진 작품들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지만 모두 디지털로 변환한 영상이다. 컷에 남은 수작업의 흔적에서 아날로그 애니메이션의 차별성을 희미하게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갤러리에서 열리는 이우성 작가(38)의 개인전 ‘어쩌면 우리에게 더 멋진 일이 있을지도 몰라’는 20세기 수공 애니메이션의 기억을 어렴풋이 떠올리게 만드는 전시다.
구성은 단출하다. 갤러리 벽면 하나를 차지한 스크린에 걸린 6분 32초 길이의 영상이 메인 작품이다. 영상을 구성한 오일파스텔화 1969장 중 25점을 나머지 벽면에 갈무리해 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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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공간과 인물들을 관찰해 회화 소재로 삼아 온 이 작가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컴퓨터와 온라인 환경 안에 갇혀버린 듯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이 작업을 시작했다. 재료는 2016년 뉴질랜드에 머무는 동안 촬영한 해질녘 바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노트북 모니터에 영상을 걸어두고 한 프레임씩 멈추며 OHP 필름을 올려 윤곽과 색채를 본떴다. 3개월 동안 1969장을 그린 후 하나씩 수작업으로 스캔해 연결된 영상 파일을 만들었다.
“가고 싶지만 지금 당장은 다시 갈 수 없게 된 장소, 보고 싶은데 언제 직접 볼 수 있을지를 기약할 수 없게 돼버린 풍경, 만나서 얼굴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당분간은 그럴 수 없게 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다.”
파도 소리는 없다. 영상 위로 ‘회색과 청색 사이’ 등 피아노 독주 세 곡이 흐른다. 이 작가의 고등학교 동창인 재불 피아니스트 어자혜 씨가 중간 작업물을 전송받아 리옹 연습실에서 즉흥으로 연주해 녹음한 곡들이다. 이 작가는 “화상회의 앱으로 연락해 ‘혼자 바닷바람을 맞으며 막연한 기대를 품고 산책했던 기억’에 대한 이야기만 건넸다. 각자의 해석대로 영상과 음악을 완성해 더 흥미로운 결과물이 나온 듯하다”고 말했다.
어떤 이유로 찾아오든 바다는 방문자에게 늘 기대 이상의 감흥을 선물한다. 종로 골목에서 만나는 파도의 일렁임 역시, 전시 표제에 수긍할 짤막한 여유를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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