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돌아온 앙부일구.(문화재청 제공)© 뉴스1
“신(神)의 몸을 그렸으니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것이요, 각(刻)과 분(分)이 빛나니 해에 비쳐 밝은 것이요, 길 옆에 설치한 것은 보는 사람이 모이기 때문이다.”(‘세종실록’ 세종 16년(1434년) 10월2일)
“무지한 남녀들이 시각에 어두우므로 앙부일구(仰釜日晷) 둘을 만들고 안에는 시신(時神)을 그렸으니, 대저 무지한 자로 하여금 보고 시각을 알게 하고자 함이다. 하나는 혜정교(惠政橋) 가에 놓고, 하나는 종묘 남쪽 거리에 놓았다.”(‘세종실록’ 세종 19년(1437년) 4월15일)
조선 과학기술의 정수이자 조선 최초의 공중시계인 해시계 ‘앙부일구’에 대한 기록 일부다. 앙부일구는 세종대왕 16년(1434년) 과학자인 장영실과 이천, 김조 등에 명해 처음 만들어졌다. 이 앙부일구는 그 해 10월 거리에 설치되면서 백성들도 쉽게 시간을 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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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이 이 앙부일구에 대한 정보를 확인한 건 지난 1월이었다. 이후 면밀한 조사와 검토, 국내 소장 유물과의 과학적 비교분석 등을 진행했고, 코로나 등으로 인해 경매일정이 취소되거나 연기됐지만, 최종적으로 매입에 성공했다. 조선 1713년 이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앙부일구로, 지름 24.1㎝, 높이 11.7㎝, 약 4.5㎏의 무게를 지닌 금속제 유물이었다.
환수된 앙부일구의 특징은 정확한 시간과 계절을 측정할 수 있는 조선의 우수한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앙부일구는 정밀한 주조기법, 섬세한 은입사 기법, 다리의 용과 거북머리 등의 뛰어난 장식요소가 있다.
이용삼 충북대 천문우주학과 명예교수는 “세종 대 앙부일구는 모두 사라졌지만, 현존하는 앙부일구들은 실용적이고 정밀도가 높으며 외형적으로도 아름답다”며 “환수된 앙부일구는 제작솜씨가 특별히 뛰어나 예술적인 우아함을 겸비했다”고 말했다.
최응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도 “환수된 앙부일구는 시계 본연 기능뿐만 아니라 조각, 문양, 기법 등이 정교한 걸로 볼 때 조선 최고 수준의 기술로 봐야 한다”며 “공예사적으로도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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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숙 문화재청장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조선의 해시계 ‘앙부일구’ 환수 언론공개회에서 앙부일구를 살펴보고 있다. 2020.11.17/뉴스1 © News1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중국의 시간이 아닌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열겠다는 세종의 백성에 대한 사랑과 자주정신이 살아있는 과학기술의 승리 중 하나”라며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간을 보낸 국민들에게 앙부일구가 하나의 기쁨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