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이익과 총수의 이익은 달라 준법경영 강화해 기업가치 높일 것
신연수 논설위원
이 사건들을 계기로 일본 정부는 대대적인 기업 개혁에 나섰다. 기업의 이사회와 감사위원회가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도록 지배구조를 개선한 것이다. 독립적인 이사를 강화한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을 만들고, 모(母)회사 주주가 자(子)회사 경영진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했다. 기업 내부의 준법 감시와 경영 투명성을 강화한 결과 일본 기업과 금융시장에 대한 투자가 늘어났다.
한국은 어떤가. 기업 경영진의 비리나 불법 행위 가능성이 결코 일본보다 적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금융시장에서는 “총수 일가의 자의적 경영이 북한의 군사 도발보다 더 심각한 코리아 디스카운트(저평가) 요소”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사회의 사내외 이사들은 전부 총수 일가나 경영진이 선임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경영진을 감시해야 할 감사위원마저 이들 중에서 뽑으니 견제 기능을 할 수가 없다.
다중대표소송제 역시 자회사 경영진이 불법 행위로 회사에 손해를 끼쳐 모회사까지 피해를 입는 경우에 관한 것이다. 기업에 손해를 입힌 이사들에게 소송하는 것으로, 기업을 보호하는 제도다.
3법에 대해 경총을 비롯한 재계는 연일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투기 자본에 경영권을 침해당하고 소송이 남발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1962년 상법 제정 때부터 시행되다가 2009년 개정으로 형해화된 것을 원상 복귀하는 것이다. 새삼스럽게 ‘투기 자본의 위협’이라니 엄살이 지나치다.
다중대표소송이나 공정거래법 개정안 역시 조건들이 너무 까다로워 시장에서는 오히려 실효성이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상법 개정안에서는 집중투표제가 빠지는 등 2013년 박근혜 정부 안보다 후퇴해 정부 여당이 개혁 시늉만 한다는 비판이 많다.
사실 주요 상장 대기업들의 경영권을 모두 몇몇 가문이 세습하는 것은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 이들 가문은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데 기여했지만 3, 4세로 가면서 창업자 세대의 기업가정신은 쇠퇴하고 경총처럼 기득권만 고집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주주와 이해관계자들이 많은 기업에서 경영을 잘하든 못하든 한 가족이 계속 경영권을 갖는 것은 시장경제에 반(反)하는 일이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선진국이다. 그런데 아직도 기업의 이익과 총수 가족의 이익을 혼동하고, 기업을 건강하게 하는 법을 옥죄는 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안타깝다. 이 문제를 가장 잘 아는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여야를 떠나 기업과 나라의 미래를 위해 직접 챙길 일이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