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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츠머스 사는 영국인 “매일 아침 차 마시며 한국야구 시청”

입력 | 2020-05-16 03:00:00

한국서 교사하다 팬 된 멜러스 씨
“박용택 닮으려 수염도 따라 길러… 내겐 KBO가 가장 재미있는 리그”
20년 팬인 워싱턴 거주 커츠 씨
“한국 야구 알리려 웹사이트 운영… ESPN 경기 중계 후 방문자 폭증”




미국인 댄 커츠 씨가 아들과 응원 팀 두산의 올드 유니폼을 맞춰 입은 모습(왼쪽 사진). 영국인 조이 멜러스 씨는 LG 박용택에게 반해 콧수염까지 따라 할 정도의 열혈 LG 팬이다. 댄 커츠·조이 멜러스 씨 제공

나만 알고 있던 인디밴드가 갑자기 스타덤에 오르는 게 이런 기분일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미국 주요 스포츠가 전면 중단되면서 메이저리그(MLB) 대신 생중계되고 있는 한국프로야구(KBO리그) 인기가 뜨겁다. 한국 야구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외치는 미국과 영국의 두 야구팬을 소개한다.

○ ‘MLB 본고장’에서 보는 ‘K야구의 전성시대’

한국보다 16시간이 느린 미 서부 워싱턴주에 사는 댄 커츠 씨(41)는 가족들이 잠든 주말 밤에 거실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며 한국 야구를 본다. 한국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4개월 때 미국으로 입양됐다. 스무 살인 1999년 ‘입양아 투어’로 한국을 찾았다가 잠실구장에서 당시 두산 베어스 소속 타이론 우즈의 홈런을 보고 한국 야구의 매력에 빠졌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영문 홈페이지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그는 2000년 직접 한국 야구 소식을 다루는 영문 웹사이트 ‘myKBO.net’을 열었다.

그간 야구의 본고장 미국에서 한국 야구를 챙겨 보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myKBO 역시 ‘특이한 미국인의 특이한 취미’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미 스포츠 전문 매체 ESPN이 KBO리그 생중계에 나서기로 하자 그의 웹사이트 방문자가 폭주했다. 인터뷰 요청도 쇄도했다. 커츠 씨는 최근 ESPN의 KBO리그 개막전 생중계에 화상 전화로 출연했다.

그는 이후에도 놀라운 일이 이어졌다고 했다. “정말 많은 사람이 곧바로 응원할 KBO리그 팀을 물색하고 구단 상품을 구하는 방법을 물었다. 본인이 응원하는 MLB 팀과 유사한 KBO 팀을 찾으며 팬들끼리 벌이는 논쟁도 재미있었다. ‘새터데이나이트라이브(SNL·NBC방송의 간판 프로그램)’ 등에서도 KBO 얘기가 나온다.”

커츠 씨에게 개막 첫 주 관전평을 부탁했다. “가장 놀라운 팀은 단연 롯데다. 새 지도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 시즌 내내 이를 유지할지 지켜보겠다. 응원팀 두산에서는 늘 호세 페르난데스를 보며 놀란다. 매일 안타를 치는 것 같다. LG 로베르토 라모스도 눈여겨보고 있다. LG에 한동안 거포가 없었기 때문에 팬들도 기대가 클 거다.”

일각에서는 미국 팬들의 KBO 사랑이 ‘스포츠 생중계’에 굶주린 이들의 잠깐 흥미에 그칠 것으로 보기도 한다. 커츠 씨 역시 “MLB나 다른 스포츠가 재개돼도 사람들이 계속 KBO를 볼지 궁금하다”고 했다. 다만 그는 “새로 유입된 팬들을 다 붙잡지 못한다 해도 중계로 한 명의 팬이라도 더 생겼을 것”이라며 노출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기대했다.

커츠 씨는 한국 야구에 대한 관심이 어머니를 찾는 일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밝혔다. 그는 “내가 나온 기사를 보고 어머니가 만남을 원한다면 응할 것”이라고 했다. 입양 서류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는 1959년생 이명숙 씨다. 부친은 그가 태어나기 전에 차 사고로 숨졌다.

○ 축구 종주국에서 한국 야구를 외치다

2014∼2018년 한국에서 외국인학교 교사로 일한 영국인 조이 멜러스 씨(35)는 “내게 KBO는 세계에서 가장 재미있는 리그”라고 말한다. 한국보다 8시간 느린 영국 남부 포츠머스의 집에서 매일 오전 10시 30분(평일), 6시(주말) 차 한잔을 마시며 한국 야구를 시청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가 있는 축구 종주국 영국에서 나고 자랐고 부친이 프로축구 선수였던 멜러스 씨는 한국에 오기 전 스포츠라고는 축구밖에 몰랐다. 한국 생활 초기에도 밤을 새워가며 EPL 생중계를 챙겨봤다. 하지만 쌓이는 피로에 EPL 새벽 관전을 포기해야 했다. 이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게 KBO리그였다.

2015년 5월 처음 찾은 잠실구장에서 그는 LG 대표 선수 박용택에게 반했다. 당시 좌익수였던 박용택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늘 외야 418구역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수염도 박용택을 따라 기르기 시작했다”고 했다.

2018년 교사를 그만둔 그는 퇴직금을 털어 야구의 본고장 미국으로 건너갔다. MLB 전 구장을 누비며 시즌 팀당 162경기 중 148경기를 직접 관람했다. 지난해에는 마이너리그까지 탐방했다. 멜러스 씨는 “미국에서도 myKBO를 통해 한국 야구 소식을 꾸준히 챙겨 봤다”고 했다.

그는 언젠가 한국프로야구 구단, 구장 및 관광명소를 소개하는 책을 쓰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제 전 세계 팬들과 KBO를 함께 즐길 수 있어 너무 기쁘다. 어서 관중이 야구장으로 돌아가 한국 팬들이 만드는 열정적인 분위기에 세계 팬들이 놀라는 날이 오길 바란다.”

멜러스 씨는 “주변의 많은 외국인이 ‘한국 프로구단의 굿즈(상품)를 어떻게 사느냐’고 묻는다”며 한국 구단들이 영어, 스페인어 등 외국어 서비스로 해외 배송 과정도 간편하게 만들어 세계 팬들에게 다가서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는 “LG 트윈스가 영문 소셜미디어 관리자를 원한다면 즉각 응하겠다”며 웃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