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익은 들국화, 시인과촌장, 고 유재하와 김광석, 김현철, 안치환, 낯선사람들(이소라 등)을 비롯해 수많은 음악가와 교류하고 음반 제작을 도왔다. 수줍음 많은 성격에 두문불출로 유명한 그는 근 10년 새 몇 차례 투병하고 회복했다. 지난해 오랜 동반자인 장필순과 마침내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다음 신작도 구상 중이다. 35년간 하지 않은 공연을 여는 일 역시 요즘은 조금씩 상상해본다. 최소우주 제공
조동익(60). 1980년대 단 두 장의 음반으로 전설이 된 명듀오 ‘어떤날’ 멤버. 친형 고 조동진과 보석 같은 음악공동체 ‘하나음악’을 이끈 이. 함춘호(기타) 등과 더불어 베이시스트이자 프로듀서로 수많은 가요 음반을 조탁한 장인.
“(음악으로 말할 뿐) 인터뷰는 하지 않기로 했으니 양해해달라”고 했지만 그와 마주 앉아 제주 소주를 주고받다보니 검은 우물 속을 들여다보듯 신비로운 아티스트의 심원한 음악세계를 한 바가지 나눠 마실 수 있었다. 조동익은 26년 만의 정규앨범 ‘푸른 베개’를 7일 내놨다. 1집이자 명반 ‘동경(憧憬)’(1994년) 이후 ‘넘버3’ ‘내 마음의 풍금’ 등의 영화음악을 만들고 그 일부를 앨범으로 내긴 했지만, 12개의 신곡이 빼곡한 음반의 기습적 발표는 조동익을 마음 속 명예의 전당에 박제해둔 음악 팬들을 죽비처럼 깨웠다. 그와 측근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26년 만의 앨범 제작기를 재구성해봤다.
조동익의 신작 ‘푸른 베개’ 표지.
●8년간 멈춘 음악, 26년 만의 개화
광고 로드중
다만 “텃밭의 흙을 헤집던 감촉, 손 위로 기어 다니던 벌레들”의 공감각적 잔상만은 인장처럼 남았다. 그것은 신비로운 전이(轉移)였다. 신작의 화폭을 조동익은 앰비언트(환경음악)와 미니멀리즘으로 뿌옇고 강렬하게 채색해냈다. 역설적이다. 전자 노이즈가 땅을 만들고 숲과 바람을 형성하는 방식. 장필순 7집, 조동진 유작(2016년), 장필순 8집(2018년)을 위해 곡을 만들고 프로듀스, 믹스, 마스터링을 맡으며 입체적 소리 건축과 노이즈의 미학을 벼려온 터다. 그 항해가 첫 항구에 다다랐다. “마침내 정말로 해보고 싶었던 음악이었기에 나의 전부를 쏟아 부었다.” 그래서 오랜 세월 장롱 깊숙이 묻어둔 자신의 이름을 다시 꺼내 음반에 달았다.
최소우주 제공
신작의 시적 화자는 “한때 날개를 지녔던 사람”이다. “바람을 타고 날던 때를 사무쳐 그리워하다 끝내 바다 속에 잠겨 소금처럼 녹아버리길 꿈꾸는” 이야기다. 5분이 넘는 첫 연주곡 ‘바람의 노래’에서부터 비장한 단조 선율에 테이프 딜레이(tape delay) 효과를 얹어 아득히 나부끼는 처연함을 그려냈다.
●현악과 노이즈가 만든 거대한 청각적 풍경
3번곡은 11분 48초에 이르는 몽환적 연주곡 ‘푸른 베개’다. 조동익은 푸른색 마니아다. 베개나 이불 천도 그 색을 많이 쓴다. 악몽을 잘 꾼다. 잘 때도 음악을 큰 볼륨으로 틀어놓고 잔다. 음 공간 전체를 활로 가르는 듯한 첼로(이지행) 등 현악이 신작의 열쇠 중 하나. ‘동경’ 때부터 호흡을 맞춘 윤정오 엔지니어가 경기 파주 ‘악당이반 스튜디오’에서 제주의 조동익과 실시간 화상통화를 하며 현악 녹음을 진행했다.
가수 장필순
광고 로드중
사실상의 대단원인 ‘날개 II’. 날개의 상실자는 어떤 막다른 곳에 다다른다. ‘나의 상처와 나의 분노가/소금처럼 녹아내리도록…’ 외침 속, 소리의 원경에 어떤 노이즈가 끼어든다. 무감한 미풍처럼 쓸려가고 불어오는 그것은 속삭임의 바다다.
‘그립…다… 그립…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