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 도시/스티븐 존슨 지음·김명남 옮김/344쪽·1만5800원·김영사
1831년 영국 선덜랜드 지역에서 경련성 콜레라로 숨진 소녀의 그림. 이 소녀는 영국에서 콜레라 초기 희생자로 기록돼 있다. 선덜랜드 박물관 소장. 김영사 제공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는 19세기 콜레라 환자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환자의 정신만은 또렷하다. 이 때문에 무색무취의 자그마한 알갱이들이 둥둥 떠 있는 물이 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도 초 단위로 수명이 줄고 있다는 인식을 고스란히 느껴야 했다. 당대 사람들은 이를 ‘콜레라의 저주’라 불렀다.
대규모 전염병의 공포는 사회를 짓누른다.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발병 원인을 규명하고 공포를 극복할 해법을 찾느라 꿈틀댄다. 1854년 런던도 마찬가지였다. 뉴욕타임스나 가디언 등에 글을 기고하며 과학 대중화에 힘쓴 저자가 콜레라균이 휩쓸고 지나간 런던 소호 지역 브로드 거리를 조명했다. 그리고 의사 존 스노와 교구목사 헨리 화이트헤드라는 인물이 콜레라 확산을 막고 학계 패러다임까지 바꾼 여정을 그렸다. 인물들에게 몰입도 높은 서사를 입혔고 치밀한 문헌 연구를 바탕으로 이뤄진 상세한 묘사가 미덕이다.
당시 콜레라의 급속한 확산을 이해하려면 영국의 실상을 알아야 한다. 런던을 묘사하는 글에서 빠지지 않는 단어는 ‘악취’였다. 산업 발전으로 ‘연기 나는 도시’가 선진 도시임을 입증하듯 화석연료가 매일 타올랐다. 쓰레기와 오물이 넘쳐나는 하수도 또한 지독한 냄새의 원인이 됐다. 1851년 런던 인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240만 명으로 불어나며 시체도 넘쳐났다. 매주 구덩이 속에 시체를 던져 넣고 묻기를 반복하며 도시는 악취에 찌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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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취는 학계에서 “질병의 원인”으로 통했다. 불결하고 독한 냄새가 공기 중에 퍼져 사람을 병들게 한다는 독기론(毒氣論)이 주류 이론이었다. 하지만 존 스노와 헨리 화이트헤드가 콜레라 사망자들의 행적을 끈질기게 추적한 결과, 원인은 오염된 물이었다.
이들이 처음 “콜레라는 수인성 질병”이라고 주장했을 때 보건 당국은 “공기의 독성이 너무 강해 물까지 감염시킨 것”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조사를 해보니 콜레라 사망자의 분뇨와 온갖 세균이 담긴 오염된 구덩이의 물이 펌프 안으로 유입된 사실이 밝혀졌다. 콜레라와의 싸움에서 결정적 전환이 이뤄진 순간이다. 이 여정을 기록한 감염지도는 지금도 전해진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