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C인삼공사 한송이. 스포츠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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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KGC인삼공사 한송이는 개인통산 600블로킹을 달성하던 날 인상 깊은 인터뷰를 했다. V리그 원년멤버로 전성기를 지나 아름다운 마무리를 꿈꾸던 베테랑은 “지난시즌까지는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경기를 했지만 이제는 오늘 이 경기가 내 배구인생의 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공 하나에 더 의미가 생긴다”고 했다.
흘러가는 시간은 각자가 처한 상황이나 나이에 따라 체감 스피드는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10대는 시속 10km의 느린 속도로, 50대는 시속 50km대의 가속도로 세월이 빨리 지나가는 것을 실감한다는 말이다. 그날 한송이는 자신의 선수생활을 “이제 5세트 10점대에 들어섰다”고 정리했다. 현재 자신이 정확히 어떤 시점에 와 있는지 배구선수답게 센스 있게 표현한 얘기는 귀에 쏙 들어왔다. 그 말에 힌트를 얻어 많은 선수들에게 “지금 당신의 배구인생은 몇 세트인지”를 물었다. 흥미로운 대답이 나왔다.
신인선수들은 물론이고 프로생활 3년차 미만의 선수들은 대부분 “이제 시작”이라고 대답했다. 현대캐피탈의 2년차 세터 이원중은 “이제 1세트 시작”이라고 했다. 그에게 “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을 묻자 “서브”라고 했다. 포지션 특성상 세트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서브를 넣어야하는 세터답게 서브를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다.
대한항공 임동혁. 스포츠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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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김세영. 스포츠동아DB
그와 반대의 입장은 흥국생명의 미들블로커 김세영이었다. 올해 첫 아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는 학부모가 된 베테랑은 “이제 5세트 듀스”라고 자신의 배구인생을 정리했다. 하지만 김세영의 듀스는 27일 현대건설과의 엄청났던 5세트 경기처럼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아들의 첫 학교생활을 돕기 위해 내심 은퇴를 고려했지만 친정 부모님이 손자를 돌봐주기 위해 상경해주신 덕분에 육아고민을 조금은 덜었다.
KB손해보험 김학민. 스포츠동아DB
한국전력에서 마지막 선수생활을 불꽃을 태우려는 신으뜸과 한때 은퇴를 결심했지만 KB손해보험 권순찬 감독의 러브 콜과 손 편지를 써서 보내는 프런트의 정성에 다시 KB손해보험 유니폼을 입은 김학민은 “이제 경기를 마무리 할 시간”이라고 했다. 신으뜸은 “선수생활을 끝내기 전에 뭔가 마무리를 멋있게 하고 싶다”고 했다. 아직은 동료들이 감탄하는 타고난 점프력과 위기상황에서도 여유가 넘치는 플레이로 후배들의 모범이 되는 김학민도 “끝이 멀지 않은 시점이어서 더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전력 오재성(맨 왼쪽). 스포츠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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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신연경. 스포츠동아DB
윙 공격수에서 리베로로 전향한 흥국생명 신연경은 “3세트 초반”이라고 했다. 처음 FA선수로 계약을 맺었고 새로운 포지션에서 다시 배구인생을 시작한 것을 의미하는 3세트로 해석된다. 우리카드를 거쳐 KB손해보험에서 새로운 배구인생을 열어가는 박진우는 “이제 첫 세트를 마치고 다음 세트를 시작한다”고 했다. 삼성화재에서 FA선수로 한국전력의 유니폼을 입은 이민욱도 “이제 2세트 시작”이라며 새 출발에 방점을 뒀다. 비록 첫 세트의 결과는 나쁘지만 심기일전해서 다시 출발할 세트라는 기회가 배구에는 있다. 그래서 희망이 있다. 지금 각자의 위치에서 여한이 없도록 꾸준히 준비하다보면 언젠가는 자신의 배구인생 최고의 세트는 온다. V리그 모든 선수들의 최고세트를 응원한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