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두바이월드는 세계 금융위기 등의 여파로 두바이 전체 부채(약 800억 달러·약 94조3680억 원)의 74%인 590억 달러(약 69조6000억 원)의 빚을 안고 허덕였다. 두바이월드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두바이가 추진하던 다른 개발 사업들도 줄줄이 중단됐다.
● 저유가와 중동 정세 불안
두바이 통계센터 등에 따르면 두바이 경제는 위기가 발생한 2009년 마이너스(-) 2.6%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후 다소 회복기에 접어든 2013년 4.8%의 성장률을 보였지만 이를 기점으로 다시 성장세가 둔화됐다. 특히 지난해 성장률은 1.9%를 기록해 경제위기 다음 해인 2010년과 같은 수치를 기록했다.
주요 이유로는 저유가의 장기화가 꼽힌다. 알자지라, 미국 워싱턴 아랍전문 싱크탱크 아랍센터 등에 따르면 중동에서 가장 자유롭고 개방적인 두바이에 매력을 느껴 적극적으로 부동산을 구입하던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바레인 등 주변 산유국 부유층들의 지갑이 가벼워지면서 이들의 투자도 크게 줄었다.
부동산과 함께 경제를 떠받치던 물류와 금융 분야의 사정도 좋지 않다. 특히 미국의 대(對)이란 경제제재,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주도한 2017년 6월 카타르 단교사태가 경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당시 UAE, 사우디, 바레인 등 수니파 중동 6개국은 카타르가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밀착한다며 단교를 선언했다. 이는 두바이의 항만 시설을 통해 물자를 조달해온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 카타르가 ‘물류의 탈(脫)두바이’를 선언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카타르는 단교 후 자국의 항만 시설을 대폭 늘렸다. 부족한 부분은 아라비아반도 남부의 요충지 오만을 이용해 해결하고 있다. 한 카타르 소식통은 “단교 사태를 계기로 카타르에서 UAE에 대한 이미지가 굉장히 부정적으로 변했다”고 전했다. UAE가 카타르 덕에 먹고 산 부분은 도외시한 채 무작정 이란 문제만 들먹였다고 전했다. 그는 “훗날 단교 사태가 풀려도 절대 두 나라의 관계가 예전처럼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늪에 빠진 부동산 시장
두바이 유명 부동산개발회사 ‘다막’이 지난해 3월 진행했던 특별 판매 행사다. 당시 다막은 769만9000디르함(약 24억7200만 원) 이상인 고급 빌라를 사는 고객에게 한국의 원룸에 해당하는 아파트 한 채를 공짜로 주겠다고 해 큰 주목을 받았다.
최근 다막 측에 “이 행사를 언제 재개할지 알려달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더니 20분 만에 이메일 답신 대신 전화가 걸려왔다. 다막 관계자는 기자에게 “해당 행사의 재개 여부는 알려줄 수 없지만 지금도 고급 빌라를 구입하는 고객에게 아파트를 대폭 할인 판매하고 있다.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하자”며 다짜고짜 만나자고 했다. 그는 “다른 고객보다 더 많은 할인이 가능하다”며 집요하게 부동산 구매를 권유했다.
외국인 기자에게까지 이런 공격적인 마케팅까지 펼치는데도 두바이 부동산 시장 상황은 좋지 않다. 시장조사회사 캐번디시 맥스웰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두바이의 주택 가격은 전년 동기대비 15.3% 하락했다. 올해 1월과 비교해도 9.4% 떨어졌다. 두바이의 주요 지역인 팜주메이라(―14%), 두바이 마리나(―13.5%), 비즈니스베이(―13.4%), 다운타운(―14.2%) 등 곳곳이 모두 지난해 6월보다 대폭 하락했다. 또 다른 현지 부동산업체 ‘루스타’는 현재 두바이 전체의 공실률이 38%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 쉽지 않은 체질 개선
과감한 체질 개선이 어려운 이유로는 허약한 경제 구조가 꼽힌다.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원자재 산업도, 일반 제조업도 사실상 전무해 부동산, 물류 등 특정 산업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주력 산업이 위태로울 때 이를 대체할 산업이 전무해 위기가 오면 도미노처럼 쓰러질 가능성이 높다.
2018년 기준 약 320만 명인 전체 인구 중 자국민 비율이 약 26만 명에 불과한 것도 경쟁력 약화 요인이다. 두바이인들은 대부분 정부 부처와 공기업의 관리·감독직에 근무한다. 실무 및 전문 업무는 북미, 유럽, 동아시아에서 온 외국인 인력들이 맡고 있다. 장기 계획 수립이 어렵고 문제가 있을 때 책임 소재도 불명확하다. 두바이 경제가 휘청거릴 때마다 외국인 전문 인력들이 대거 빠져나가는 모습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또 두바이인들은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기에 자기계발에 소홀하고, 그러다보니 경쟁력을 배양할 환경 자체가 조성되지 않는다.
‘제2, 제3의 두바이’를 지향하며 외국기업 유치와 개발사업을 진행하는 주변 국가들이 늘어나는 것도 두바이에는 악재다. 차로 약 1시간 거리인 아부다비는 물론, 비행기로 약 1시간 거리인 카타르 도하가 대표적이다. 두 도시는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두바이가 독점해온 ‘중동 허브’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최근에는 인프라 투자에 적극적인 쿠웨이트의 쿠웨이트시티, 오만의 무스카트는 물론이고 ‘은둔의 왕국’으로 통했던 사우디까지 중동 허브를 꿈꾸고 있다. 2017년 6월 ‘미스터 에브리싱’으로 통하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실권을 잡은 후 사우디 정부는 관광 개방, 여성 인력 활용, 국제금융 단지 조성, 대중문화 개방 등을 추진하며 경제 구조 개선을 도모하고 있다. 홍해 인근에 계획도시 ‘네옴’을 세우겠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 ‘엑스포 2020’으로 반격 노리는 두바이
두바이의 해외 투자유치를 담당하는 공기업 ‘두바이 포린다이렉트 인베스트먼트(DFI)’의 파하드 알게르가위 최고경영자(CEO)는 AFP통신에 “일부 언론이 두바이 경제 상황을 과장 보도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새로운 투자를 하기 좋은 세계 도시’ 순위에서 늘 10위 안에 들었다”고도 강조했다.
하지만 ‘엑스포 2020’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푸어스(S&P)의 세프나 자그티아니 애널리스트는 로이터에 “엑스포로 방문자 수가 늘고, 일시적으로 호텔과 소매업이 활성화될 수는 있겠지만 이것만으로 부동산 시장의 회복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고 진단했다.
▼한때 중동 최고 혁신가로 꼽힌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 국왕▼
알막툼 두바이 국왕
최근 그의 사생활 논란이 각국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2004년 결혼한 6번째 부인 하야 빈트 알후세인 요르단 공주(45)가 올해 7월 영국 런던으로 거주지를 옮긴 후 이혼 소송을 제기하면서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하야 공주 측은 “자식들을 강제 결혼으로부터 보호하는 명령을 내려 달라”, “폭행 및 괴롭힘에 대한 보호 명령을 내려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하야 왕비
7개 토후국의 연방 체제인 UAE 내부에서도 무함마드 국왕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통상 석유부국인 아부다비 국왕이 대통령, 두바이 국왕이 부통령 겸 국무총리를 맡아왔고 나머지 5개 토후국 국왕들의 역할은 미미하다. 아부다비 개발 전만 해도 두바이의 위상이 7개 토후국 중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2009년 경제위기 때 아부다비의 대규모 재정 지원에 의존하면서 무함마드 국왕의 발언권도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최근 UAE가 추진한 외교안보 정책 중 상당수가 두바이의 이익과 상충된다는 점도 그의 영향력 약화를 보여주는 증거로 꼽힌다. 특히 △예맨 내전 개입 △친이란 성향을 보이는 카타르와의 단교 △대이란 강경 대응 △터키와의 거리두기 등 모두가 두바이의 이해관계와 어긋난다. 아부다비와 달리 석유가 거의 나오지 않는 두바이는 안정적인 지역 정세를 바탕으로 물류, 관광, 부동산, 금융업 등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UAE가 추진하는 정책 대부분이 지역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이어서 속이 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카이로=이세형특파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