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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경쟁 3개 은행이 공동점포 운영… 비용 줄이려 ‘적과의 동침’

입력 | 2019-11-11 03:00:00

[제로 이코노미 시대 변해야 살아남는다]<1> 위기의 글로벌 은행들
수익 악화속 생존 묘안 골몰




영국 런던 교외지역 모팅엄에 위치한 비즈니스뱅킹허브센터(왼쪽 사진). 이 센터는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 로이드, 바클레이스 등 은행 3곳이 예산을 아끼기 위해 비용을 분담해 공동 운영하는 점포다. 대형 금융회사와 기업이 밀집한 일본 도쿄 중심 히비야역 인근 미쓰비시UFJ은행의 ATM. 또 다른 대형 은행 미쓰이스미토모은행과 ATM을 함께 사용한다는 안내사항이 적혀 있다. 런던=김형민/도쿄=장윤정 기자

‘business banking hub(기업 금융 허브).’ 지난달 29일 찾은 영국 런던 교외 모팅엄의 한 건물 1층에는 이런 간판이 걸려 있었다. 한국 시중은행 점포의 절반도 안 되는 공간엔 현금 및 동전 입금기, 환전기기와 고객 상담용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은행 무인점포 같지만 어떤 은행의 간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곳은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던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 바클레이스, 로이드가 함께 운영하는 ‘공동 점포’이기 때문이다.

점포를 관리하는 이본 씨는 “은행들이 예전만큼 돈을 못 버니 비용을 줄여야 해서 은행 3곳이 공동 투자해 만들었다”며 “이곳이 영국 은행들의 미래 모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은행들은 4월부터 모팅엄을 비롯해 영국 주요도시 6곳에서 공동 점포를 열고 시범 운영 중이다. 지금은 자영업자와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현금 인출, 환전 서비스만 하지만 향후 대출영업 등의 업무를 추가할 예정이다. 근처 피자집 사장 무스타파 베기 씨는 “일반 은행은 오후 5시 전에 문을 닫는데 여기는 8시까지 연다”며 “장사가 끝나고도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고 했다.

마이너스 금리로 수익성 악화의 쓰나미를 맞은 글로벌 은행들이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금리 하락으로 전통적인 수익원인 이자마진을 내는 게 어려워지자 영국 일본 등 금융 선진국의 은행들은 비용 절감, 비이자 수익 확대 등으로 저마다 위기 탈출을 위한 시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 다급한 글로벌 은행들, 적과의 동침 나서


일본 5대 메가뱅크에 속하는 미쓰비시UFJ은행과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은 올 9월부터 점포 밖에 설치된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공동으로 쓰기로 했다. 메가뱅크끼리 이런 식의 제휴를 한 건 일본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두 은행 고객은 평일 낮에 이 ATM에서 현금을 인출하면 약 100엔(1060원)인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최근 1만8000명 감원 계획을 발표한 독일 도이체방크는 고액자산가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자산관리 분야에 직원 수백 명을 추가 고용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프랑크푸르트 본사의 슈테판 슈나이더 도이체방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전통적인 대출시장은 은행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제한돼 있다. 반면 고령화로 인해 자산관리 사업은 매우 유망해졌다”며 “여러 은행이 이 분야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금융권에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전략으로 ‘아마조네이션(아마존화)’이 강조되고 있다. 저금리, 저성장 시대에 적응하려면 아마존처럼 한 플랫폼에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해 소비자 친화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전략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는 지난해 10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은행과 증권사 업무를 통합한 서비스를 내놓았다.

○ “변하지 않으면 망한다” 위기감


특유의 보수적인 문화로 변화에 소극적이던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기민하게 움직이는 것은 그만큼 생존을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컨설팅 기업 맥킨지앤드컴퍼니는 ‘2019년 글로벌 뱅킹 연례 보고서’에서 세계 595개 은행의 약 60%가 최근 10년간 자기자본비용에 못 미치는 수익을 냈다고 지적했다.

은행의 위기는 일자리 충격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도이체방크 본사 앞에서 만난 이 회사 25년 차 직원 A 씨(50·여)는 “회사가 직원을 줄줄이 해고한다고 해 명예퇴직하려는 사람이 많다”며 “구조조정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털어놨다. 독일 서비스노조인 페어디의 아네그레트 카이저 금융담당 부장은 “대형 은행들이 구조조정을 하니 금융권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인력을 너무 많이 줄인다”고 했다. 은행 직원들 사이에선 ‘회사는 정부에 벌금 낼 돈은 있고, 직원 고용을 유지할 돈은 없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이런 위기는 은행들이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에 기대어 제때 혁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비판도 나온다. 코메르츠방크 8년 차 직원인 A 씨는 “은행들은 그간 여러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지금은 수익 개선을 위해 구조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만난 글로벌 투자은행 직원 B 씨는 “영국에 나와 있는 한국계 은행들과 종종 일을 같이하는데 내가 보기엔 한국이 더 위기”라며 “직원들이 고액 퇴직금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더라.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새로운 전략과 상품도 내놓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 글로벌 돈풀기에도 꿈쩍 않는 세계 경기 ▼


유럽 주요국-日 제로이하 금리 유지… 미래 불안감에 투자-소비 줄여
금리인하 효과 예전같지 않아… 세계 국채 34%가 마이너스 금리


주요국의 금리와 물가, 경제성장률이 사실상 제로(0)에 수렴하는 현상은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부터 시작돼 약 4, 5년 전부터 가속화됐다. 전문가들은 선진 경제권에서 이런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조만간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정책금리나 예금·대출금리가 제로 또는 마이너스(―)인 나라는 스웨덴 덴마크 독일 스위스 등 유럽 주요국과 일본 등이다. 유로존의 유럽중앙은행(ECB)도 2016년 이후 정책금리를 0%로 유지하고 있고, 시중은행에 적용하는 예금에는 보관료를 물리고 있다. 프랑스 벨기에 등의 국채 금리도 한동안 ‘0’보다 낮은 수준에서 지속된 바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전 세계 투자등급 국채 중 약 34%가 마이너스 금리 상태다. 금액으로는 16조8384억 달러(약 1경9489조 원) 규모다.

제로 금리가 확산하는 것은 각국 투자자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투자나 소비를 줄이고 있어서다. 미중 무역분쟁 등의 이유로 글로벌 경제의 침체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금리 하락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낮춰 경기를 끌어올리려 하고 있지만, 문제는 통화정책이 더 이상 예전 같은 효력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각국 금리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내려가 있는데도 성장률이나 물가가 반등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국 주요국들이 금리, 물가, 성장률이 모두 낮은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제로 이코노미’의 함정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도 조만간 금리가 0%대로 낮아지면서 이와 비슷한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물가상승률은 올 들어 처음 마이너스를 보인 적이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도 1%대가 유력하다.

한국은행 역시 금리 인하의 효과가 예전만 같지 못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기준금리를 낮추면 경기가 좋아지기보다 부동산 등 자산 가격만 높이는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많은 나라가 금리 인하뿐 아니라 다양한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고려해야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팀장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경제부 조은아, 도쿄·사이타마=장윤정 기자,
런던·리버풀=김형민, 프랑크푸르트=남건우,
코펜하겐·스톡홀름=김자현
▽특파원 뉴욕=박용, 파리=김윤종, 베이징=윤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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