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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수몰민[횡설수설/우경임]

입력 | 2019-10-14 03:00:00


싸이월드 폐쇄 소식을 들은 지난 주말, 애플리케이션(앱)을 연신 실행시켜 봤지만 응답이 없었다. 20대를 차곡차곡 채운 추억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울컥해졌다. 미니홈피에는 젊음을 훈장으로 단 사진들이 가득했다. 젊음이 불안했던 시절, 서로를 위로했던 따뜻한 대화도 남아 있다. 싸이월드는 오늘 날짜와 동일한 날짜에 올렸던 게시글을 불러다 보여주는 ‘투데이 히스토리’라는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그렇게 소환되는 육아일기를 아이와 함께 보며 킥킥거리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싸이월드는 1999년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창업동아리에서 잉태됐다. 2001년 미니홈피 서비스를 선보였는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는 개념이 일반화되기도 전에 탄생한 혁신적인 플랫폼이었다. 마크 저커버그가 하버드생만의 SNS로 페이스북을 시작한 것보다 3년이나 빨랐다. 미니홈피 주인(ID)은 도토리(가상화폐)를 사서 스킨(배경화면)을 바꾸고 미니미(아바타)를 꾸몄다. 사진과 게시글을 올리면 일촌(친구 또는 팔로어)이 방문해 댓글을 올린다. 일촌의 일촌 미니홈피를 계속 연결해서 방문하는 ‘파도타기’도 있었다. ‘원조’ SNS라 불릴 만한 기능을 갖추고 2000년대 초·중반 전성기를 누렸다. 2007년 CNN이 한국을 “미국의 페이스북보다 먼저 싸이월드가 등장한 정보기술(IT) 강국”으로 소개한 적도 있다.

▷싸이월드는 이용자 폭증으로 서버 관리에 어려움을 겪다가 2003년 대기업(SK커뮤니케이션즈)에 인수됐다. 공룡이 된 싸이월드는 ‘모바일 시대’ 적응에 실패하며 쇠락의 길로 들어선다. 4년 전에 전제완 전 프리챌 대표가 인수해 재기를 꿈꿨으나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문을 닫을 처지라고 한다. 싸이월드 도메인 만료일은 다음 달 12일이다. 예고 없는 폐쇄로 추억이 강제 삭제될 위기에 처한 이용자들은 “백업이라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한다.

▷아날로그 시대에 이사를 갈 때면 누구나 앨범과 편지지 묶음을 우선적으로 소중히 챙겼다. 온라인 세상이라 해서 추억이 소중하지 않을 리 없건만, 디지털에선 저장만큼 소실도 쉽다는 사실에 속이 탄다. 2013년 1세대 커뮤니티서비스 프리챌이 종료 한 달 전에 이를 공지하자 이용자들이 일일이 글과 사진을 내려받는 수고를 했다. 7월 1세대 인터넷포털 드림위즈가 이메일 서비스를 중단해 20년간 사용한 이메일이 사라지기도 했다. IT 기업의 부침으로 수난을 겪고 있는 디지털 수몰민들은 ‘잊혀지지 않을 권리’를 호소한다. 이 글이 싸이월드에 대한 조서(弔書)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