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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 전투[횡설수설/이철희]

입력 | 2019-09-28 03:00:00


영화 ‘국제시장’에서 피란민들이 흥남 부두에 정박한 미국 군함에 타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그렇게 우리에게 각인된 흥남 철수 작전은 아비규환의 필사적 탈출이다. T R 페렌바크는 책 ‘이런 전쟁(This Kind of War)’에서 흥남 철수에 대해 “덩케르크(됭케르크) 철수와는 달랐다. 서둘러 배에 타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은 없었다”고 썼다. 군 작전 차원에선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기습 공세로 전멸 위기에 처했던 연합군이 가까스로 빠져나온 됭케르크처럼 절박한 상황은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미 군함에 타지 못하면 공산치하를 탈출할 길이 없었던 피란민들의 절박성은 다른 문제였지만.

▷유엔군과 민간인 20만 명의 흥남 철수를 가능하게 한 것은 미 10군단 예하 제1해병사단의 장진호 전투였다. 1950년 말 개마고원에는 어느 때보다 지독한 추위가 찾아왔다. 옷을 여러 겹 입어도 살을 에는 추위를 막을 수 없던 장병들의 손과 발은 동상으로 하얗게 변했다. 수통의 물도, 캔 속의 전투식량도 얼어버렸다. 수류탄은 불발되기 일쑤였고, 차량은 시동 걸기가 어려웠다. 그런 혹한 속에서 미 해병들은 음산한 나팔 소리와 함께 밀물처럼 밀려오는 중공군에 포위된 상태에서 격렬하게 싸우며 퇴로를 열었다. 남쪽으로 물러서면서도 공격전을 계속했다. 그래서 그 후퇴는 ‘남쪽으로의 공격’이라고 불렸다.

▷장진호 전투는 미국인들에겐 ‘잊혀진 전쟁’이 된 6·25의 기억을 새삼 되새기게 하는 중요한 상징이다. 워싱턴 한국전쟁기념공원에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고 새겨진 기념비와 함께 서 있는 조형물도 장진호의 해병 장병들을 형상화한 것이다. 장진호 전투의 유엔군 측 사상자는 약 1만7000명에 달했다. 장진호 전투는 ‘초신 퓨(Chosin Few)’라고 불린다. 즉 장진(長津·일본어 발음으로 초신)에서 압도적 병력 열세에도 온갖 고난을 이겨내 마침내 ‘선택받은 소수(chosen few)’가 된 영웅들의 전투였다.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방한한 장진호 전투 참전 미군 6명이 어제 가족들과 함께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장진호 전투 영웅 추모식’에 참석해 한미 동맹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어제는 미 해군과 해병대가 한국 대신 알래스카에서 합동 상륙 연습 등을 하는 극지원정역량연습(AECE)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작년부터 한반도에서 한미 연합 훈련이 유예되면서 다른 장소를 찾게 됐다고 한다. 동맹의 균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요즘, 장진호 전투는 새삼 혈맹(血盟)의 미래를 묻고 있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