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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와인’ 만들기… 쉽지 않네[포도나무 아래서]〈33〉

입력 | 2019-08-06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왼쪽)와 신이현 작가

레돔의 친구 에두아르 이야기다. 레돔의 나이는 마흔, 에두아르는 마흔다섯, 두 사람은 늦은 나이에 농업학교에서 만났다. 원래 그는 아프리카에 와인 수출하는 일을 했는데 뒤늦게 농부가 됐다. 노르망디가 고향인 그는 그곳에 포도나무를 심고 노르망디 지역의 이름을 건 와인 만들기를 꿈꿨다. 현대의 노르망디는 밀과 목축, 사과가 주요 농사지만 중세 때만 해도 많은 포도밭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사라져버린 고향의 포도밭을 다시 살리고 잃어버린 옛 조상의 와인 맛을 재현해 낼 생각이었다.

농업학교를 다니면서 그는 포도나무에 적합한 땅을 발견했다. 파리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센강이 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이었다. 강물에 반사된 햇빛이 종일 언덕을 되비추는 숲이었다. 땅주인은 절대 팔지 않겠다고 했고 결국 그는 빌려서 그곳을 개간했다. 포도나무를 심을 때는 노르망디 곳곳에서 사람들이 왔다. 레돔도 보름 동안 그의 집에서 숙식하면서 일했다. 지역민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함께 심은 포도나무 밭이었다.

“노르망디에 포도밭이라니, 이런 시도는 너무 멋져요. 우리 지역 조상님들이 만들었던 그 와인 맛이 정말 궁금해요. 보세요, 여기 포도나무 한 그루에 우리 가족 이름표를 달았어요. 역사적인 순간이에요!”

지난해 3년 차에 첫 수확이 있었고 그것으로 와인을 담갔다. 올해 뚜껑을 열었을 때 와인은 실패였다고 했다. 나는 실패한 와인이라도 맛을 보고 싶었지만 레돔은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 또한 첫해에는 실패했다. 한국에서는 내추럴 와인을 만드는 문화가 없기 때문에 장비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인간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사이에 과일즙은 제멋대로의 맛으로 가버린 것이다. 노르망디는 프랑스이긴 하지만 포도 와인을 만드는 문화가 없기 때문에 장비를 구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프랑스의 작은 와이너리들은 병입이라든가 찌꺼기 뽑아내기, 코르크 막기 등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은 공동으로 쓰는, 최적화된 기계들이 대신해준다. 시간과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 기계들이 노르망디까지 오지는 않는다. 와인 생산 지역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결국 에두아르는 자신의 작업장과 기계를 다 갖춰야 한다.

“올해는 포도가 햇빛에 심하게 화상을 입었어. 그렇지만 썩 나쁘지는 않아. 지금까지 발전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어. 문제는 와인을 만들 작업장이 아직 없다는 거야. 최소한의 장비는 갖추어야 하는데 말이야.”

에두아르의 농법은 숲의 생태계를 가능한 한 그대로 유지하는 포도밭을 일구는 것이다. 잡초를 베는 정도의 최소한으로 나무를 돌본다. 생태학자들이 와서 그의 포도밭에 몇 종류의 자연 벌레들이 그대로 살고 있는지 조사할 예정이었다. 숲에 사는 벌레종들이 그대로 살아간다면 그곳은 숲이라는 생태계에 자리한 야생 포도밭이 될 것이다. 수확을 보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 또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업 초반의 ‘죽음의 계곡’을 지나는 중인 듯했다.

“걱정은 접어두고 네가 만든 시드르를 한번 마셔 볼까.”

새로운 와인을 만들기 위해 이국만리로 간 친구가 만들어온 와인, 그는 ‘레돔 시드르’를 두 손에 들고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는 각자 첫 번째 와인을 함께 맛보는 것이 목표였지만 인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와인이다. “아, 정말 흥미롭다 한국 사과!” 레돔 시드르를 마신 그의 첫마디였다. 사과라는 같은 과일이지만 나라를 달리하니 땅과 빛이 달라지고, 완전히 다른 맛의 술이 나온 것에 놀라고 즐거워했다.

“나에겐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그렇지만 내년엔 내 와인도 함께 마실 수 있을 거야. 우리 바다로 수영이나 하러 갈까? 노르망디 물이 정말 좋아. 풍경도 끝내 줘.”

아직 넘어야 할 산과 갈 길이 먼 두 농부는 바다에 도착하자 해맑은 얼굴이 되었다. 한마디 말도 필요 없이 훌훌 벗어던지더니 넘실대는 파도를 향해 달려갔다.

 
신이현 작가

※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와 충북 충주에서 사과와 포도 농사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