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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대리모’ 매달린 불임부부들 “브로커 선처” 잇단 탄원

입력 | 2019-06-15 03:00:00

[위클리 리포트]인도-동남아 등서 태어나는 ‘코리안 구글 베이비’
국내 ‘대리모 임신하청’ 원천봉쇄




“시험관 시술은 신체적 고통만 있고 성공 확률이 낮아서 대리모로 불임 부부에게 도움을 줄 생각이었습니다.”

지난해 11월 수도권의 한 법원에서 열린 대리모(代理母) 브로커 A 씨의 결심 공판. 불임 부부에게 외국인 여성의 난자를 알선한 혐의로 기소된 A 씨 측은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하며 이렇게 말했다. A 씨 측은 “깊이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다. 불임 부부들도 선처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강조했다.


○ ‘인도 대리모’ 통한 출산… 재판부엔 탄원서

법원 판결 등에 따르면 인도에서 사업을 하던 A 씨는 어느 날 TV를 보다 한국에선 불법인 대리모와 난자 제공이 인도에선 합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의 불임 부부들은 몽골계를 포함해 다양한 인종이 거주하는 인도를 선호했다고 한다.

A 씨는 2013년 ‘메디컬 투어’(의료관광)를 내세운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다. 한국의 불임 부부를 인도 대리모와 연결해주는 곳이었다. A 씨는 2년 뒤인 2015년 인터넷 카페를 통해 연락이 온 불임 부부를 만났다. A 씨는 “아내의 난자를 채취할 수 있더라도 난자가 착상이 잘 되지 않을 수 있다. 난자 공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며 대리모 계약뿐만 아니라 난자 공여 계약도 맺자고 했다. 임신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남자의 정자와 제3자의 난자를 수정해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시킨 뒤 아이를 낳자는 것이었다.

부부는 고민 끝에 A 씨에게 800만 원을 건넸다. 아이를 낳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다. A 씨는 남편의 정자를 가지고 인도로 갔다. 인도의 한 병원에서 남편의 정자와 몽골계 인도인의 난자를 수정시켰다. 수정된 배아는 다른 인도인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됐다.

A 씨는 인터넷 카페를 보고 연락한 또 다른 부부들과도 만났다. “대리모 비용 외에 난자 공여를 할 경우 500만∼600만 원이 더 소요된다” “젊은 여성의 난자로 시술해야 성공률이 높다”고 설득했다. 대리모 계약 비용은 1000만 원 내외였다. 출산이 급했던 부부들은 다소 비싼 가격에도 A 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A 씨가 인도에서만 활동했던 것은 아니다. 곧 활동 반경을 인도에서 동남아시아로 넓혔다. 한 부부에게 1000만 원을 받은 뒤 남편의 정자를 캄보디아로 가져갔다. 태국 여성의 난자와 수정시킨 뒤 또 다른 여성의 자궁에 착상시켰다.

A 씨는 이 같은 방법으로 불임 부부 5쌍을 상대로 총 4300만 원을 받고 난자 제공과 시술을 알선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난자 제공을 알선하는 행위를 금지한 현행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A 씨에게 징역 1년을 구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A 씨의 도움으로 아이를 가진 불임 부부들은 법원에 A 씨의 선처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냈다. 탄원서는 “아이를 갖지 못해 힘든 삶을 살던 우리를 A 씨가 도왔다”는 취지였다고 한다. A 씨 측은 재판 과정에서 “한국의 법체계에서는 불임 부부가 대리모를 통해 임신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다. 이는 출산율 저하라는 사회 문제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1심 재판부는 “난자 제공을 알선하면서 이를 금전적 이익과 결부시킨 행위의 책임은 가볍지 않다”면서도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고 범행에 이른 경위에 참작할 바가 있다”며 A 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 불임 20만 명… 위험한 음지의 ‘임신 하청’


재력가 부부의 위탁을 받아 아들을 낳은 대리모가 출산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이 부부를 협박한 혐의로 기소된 사실(본보 5월 30일자 A1·2면 참조)이 알려진 뒤 그동안 베일에 가려 있던 대리모의 실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불임 부부가 제3의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을 하게 하는 대리모 자체가 불법이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금전, 재산상의 이익 또는 그 밖의 반대급부를 조건으로 배아나 난자 또는 정자를 제공 또는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한다.

그러나 난자와 정자를 제공하는 행위가 아닌 부부의 난자와 정자로 체외 수정한 뒤 이를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시키는 유형의 대리모까지 처벌 대상인지는 법조계에서 의견이 갈린다. 난자를 공여한 사건이라도 대부분 음지에서 은밀하게 이뤄져 대리모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최근 3년간(2016∼2018년) 전국에서 기소된 대리모 사건은 2건에 불과할 정도다.

하지만 음지에선 여전히 ‘임신 하청’이라고 불리는 위험한 불법 대리모 계약이 빈번하다고 한다. 현재 국내의 불임 진료 인원은 매년 20만 명에 달한다. 불임 부부들을 위한 온라인 카페에는 “대리모가 그렇게 나쁜 건가” “대리모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도 있다”는 게시글이 자주 올라온다.

대리모 브로커를 통한 출산은 국내와 해외를 가리지 않는다. 통상적으로는 해외 의료관광을 핑계 삼아 온라인이나 지인을 통해 홍보가 이뤄진다. 불임 부부들은 처음엔 대리모 계약만 맺었다가 이후엔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정자와 난자 공여 계약까지 맺는 사례가 많다.


○ “동남아인 4000만 원, 한국인 6000만 원” 사기 행각도

대리모 계약이 음지에서 이뤄지다 보니 종종 사기 사건에 휘말리기도 한다. 올 2월 한 지방법원은 불임 부부들에게 대리모를 알선해주겠다고 속이고 돈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된 대리모 브로커 B 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범행을 도운 B 씨의 남편에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현재 B 씨 부부가 항소해 2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법원 판결 등에 따르면 B 씨 부부는 대리모 계약을 알선하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화를 주시거나 이메일을 보내주시면 상담해 드리겠습니다”라며 불임 부부들에게 홍보를 했다. 이 홍보를 보고 다수의 불임 부부가 연락을 해왔다고 알려졌다.

B 씨는 2015년 한 불임 부부의 남편을 만나 “아파트에 대리모들이 살고 있다”며 아파트 임대차계약서를 내밀었다. “동남아 계열 대리모는 4000만 원이 들고 한국인 대리모는 6000만 원이 든다. 돈을 지불하면 임신할 때까지 (임신 시도를) 계속해 준다”고 했다. 부인의 나이가 많다며 난자를 다른 사람에게 공여받으라고 제안했다. 난자 공여 비용은 500만 원이었다. B 씨는 한국인 대리모의 이름, 병원명, 의사명을 구체적으로 들며 계약금을 요구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B 씨가 대리모를 구할 수 없는 상태였음에도 거짓말을 했다고 판단했다. B 씨가 6명에게서 총 1억7000만 원을 받았지만 대리모를 연결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간절한 상태를 이용해 범죄를 저질렀다. 피해자가 입었을 정신적인 피해가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에선 대리모 C 씨가 등장한다. 2016년 C 씨는 “불임 부부인 미국인에게 난자를 제공하고 대리모 역할을 해 아이를 낳아주면 5000만 원을 주겠다”는 B 씨의 제안을 듣고 수도권의 한 병원에서 난자를 제공했다. 그러나 B 씨는 C 씨의 난자를 미국인이 아닌 한국인 불임 부부 남편의 정자와 수정시켰다. C 씨는 계약금 300만 원을 받고 난자를 제공한 혐의로 B 씨 부부와 함께 기소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C 씨에게는 선고유예 결정을 내렸다. 선고유예는 경미한 범죄에 대해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유예기간이 끝나면 형의 선고를 면하게 하는 것이다. 재판부는 “유상으로 난자를 제공해 비난 가능성이 커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범행을 자백하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며 선처 이유를 밝혔다.


○ ‘상업적 거래’ 인정하는 국가에 대리모 몰려

불임 부부들의 간절함을 역이용해 돈을 뜯어낸 사례도 있었다. D 씨는 2014년 인터넷 카페를 통해 만난 한 여성에게 “대리모 경험이 있고 난자를 공여할 의향이 있다”며 대리모 계약을 제안했다. 대리모 계약서를 쓰면서 “내가 상황이 어려우니 우선 500만 원만 먼저 빌려주면 이틀 후에 갚겠다”며 돈을 빌린 뒤 갚지 않았다. 2016년 6월 법원은 사기 혐의로 기소된 D 씨에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불임 부부들은 사기를 당하고도 고소를 망설이곤 한다. 자신들이 불임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변에 알려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피해자들도 신고를 꺼리다 보니 대리모 사건들이 수면 위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계약이 음지에서 이뤄지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반대로 불임 부부를 빙자해 사기를 친 사건도 있었다. E 씨는 2012년 인터넷 채팅사이트에서 ‘대리모 구함’이란 채팅방을 만든 뒤 채팅방에 들어온 여성에게 문자메시지와 전화로 협박을 한 혐의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대리모 계약이 음지에서 일어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일부 국가는 대리모를 합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 우크라이나, 우간다, 미국의 일부 주는 대리모의 상업적인 거래까지 인정한다. 선진국 불임 부부들이 개발도상국의 대리모를 통해 낳는 아이들을 해외에선 ‘구글 베이비’라고 부른다.

미 캘리포니아주의 한 대리모 연결 회사는 대리모 출산 비용 등을 홈페이지에서 공개하고 있다. 대리모의 기본 월급과 심리검진, 범죄배경조사, 의료검진, 건강보험뿐만 아니라 호텔 및 여행 준비 비용까지 정할 수 있다. 금액은 9만∼13만 달러(약 1억 원) 수준이다. 본보 기자가 한국인인 것을 밝히고 문의하자 “우리 프로그램에 흥미를 가져줘서 고맙다. 어떤 도움이 필요하냐”는 답이 곧바로 왔다.

브로커 A 씨의 범행에 등장하는 인도는 2002년 대리모 출산을 합법화한 뒤 매년 3만 명의 아이가 인도인 대리모를 통해 태어났다. 비용이 싸고 대리모 지원자가 많아 한때는 ‘대리모 관광’의 성지로 불렸다. 그러나 윤리적 문제가 불거져 상업적 대리모를 통한 출산이 최근에는 금지됐다.


○ “정부, 실태조사 뒤 허용 여부 논의해야”


대리모 문제는 기술의 발전과 기존 윤리가 충돌하는, 갈등이 첨예한 문제다. 일각에선 생명의 탄생이 상업적으로 이용돼선 안 된다며 대리모 허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반대로 불임 부부가 고통받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대리모를 통한 임신을 제한적으로나마 허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아직 대리모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공식적 실태 조사도 없는 상황이다. 이일학 연세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가 태어나는 현실을 무조건 비윤리적이라고 막을 순 없다. 그러나 상업적 방식의 대리모 계약을 허용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대리모 방식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는 게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낙태가 금기시됐을 땐 낙태 관련 통계가 없듯이 현재 국내엔 대리모 관련 통계가 없어 인원조차 간접적으로 추산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실태 조사부터 시작해야 대리모 관련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호재 hoho@donga.com·전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