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교수 ‘민간지에 나타난 사상’
3·1운동 민족대표들의 재판을 전면으로 다룬 동아일보 1920년 7월 14일자. ‘전개된 독립운동의 제1막’ 기사는 민족대표들이 당당하게 조선의 독립을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DB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9일 동북아역사재단 주최 학술대회에서 발표하는 ‘3·1운동 이후 민간지에 나타난 새로운 사상들’에서 이렇게 밝혔다.
정 교수는 발표문에서 3·1운동의 결과물로 1920년 탄생한 동아일보 창간사의 3대 주지 △조선 민중의 표현기관으로 자임함 △민주주의를 지지함 △문화주의를 제창함을 분석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는 항목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 헌법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발표문은 사회주의의 유입도 분석했다. 사회주의 사상은 조선 민간신문에 앞서 중국 상하이에서 발행된 독립신문에 먼저 소개되기 시작했다. 독립신문은 1920년 3월 10일부터 ‘사회주의’라는 논문을 10회에 걸쳐 연재했다. 사회주의 사상을 지닌 언론인들이 마르크스주의 단체를 조직하는 등 운동을 이끌었다. 정 교수는 “신문은 민주주의, 민족주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와 같은 새로운 사상을 소개하고 공론화했다”고 말했다.
조선총독부는 민족지를 탄압했을 뿐 아니라 사회주의 성향의 잡지 ‘신생활’을 폐간하기도 했다. 신생활과 또 다른 잡지 ‘신천지’ 관련자 구속사태에 대해 동아일보와 천도교 계통 월간지 ‘개벽’, 최남선이 냈던 잡지 ‘동명’ 등은 총독부의 탄압을 규탄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총독부는 해외에서 유입되는 서적도 단속했다. 사상서적의 유입을 차단하고자 러시아 방면에서 들어오는 간행물을 차단했고, 만주 방면 국경지대의 검열을 강화했다. “치안유지법 등을 활용해 통제를 갈수록 강화했고, 1931년 만주사변 이후에는 새로운 사상의 소개가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됐다”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