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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의 전쟁史]〈39〉15분 비행

입력 | 2019-01-01 03:00:00


무기 검증은 아주 어렵다. 전쟁은 수십 년에 한 번 벌어진다. 평소에 발사를 하고 운영을 해도 막상 실전에 들어가면 갖가지 예상치 못한 사태를 만난다. 최고의 무기라고 각광을 받았던 무기가 쓸모없는 것으로 판명나기도 하고, 못 쓸 것 같다던 무기가 엉뚱한 쓸모가 발견돼 용도전환이 되는 경우도 있다. 2차 세계대전 마니아라면 누구나 다 아는 독일의 88mm 포는 고사포로 만든 것인데, 엉뚱하게 대전차포로 각광을 받다가 아예 타이거 탱크에는 전차포로 탑재되었다.

전술로 들어가면 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진다. 1982년 아르헨티나와 영국이 포클랜드(말비나스) 제도를 두고 벌인 포클랜드 전쟁은 베트남전과는 차원이 다른 첨단무기의 전쟁이었다. 공중전이 선봉이었다.

그러나 정작 포클랜드 하늘에서는 전투기 공중전이 거의 벌어지지 않다시피 했다. 포클랜드는 아르헨티나 영토에서도 400km나 떨어져 있다. 본국에서 출격했던 아르헨티나 공군기들이 포클랜드 상공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5분 남짓이었다. 그 시간에 함선을 공격하고 돌아가야 했다. 공중전을 벌일 시간이 없었다.

영국 전투기들은 전투를 포기하고 내빼는 아르헨티나 공군기를 요격했다. 거저먹다시피 하는 싸움인데도 영국 역시 사정이 좋지 않았다. 전투 초반 영국의 최신예 구축함 셰필드가 프랑스제 엑조세 미사일에 맞아 격침되었다. 공포에 질린 영국 함대는 항공모함을 엑조세의 사정거리 밖으로 멀리 떼어 놓았다. 그 때문에 영국의 해리어 전투기들도 포클랜드 상공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겨우 15분 남짓이었다고 한다. 양쪽 다 제대로 된 전투를 벌일 수도, 오랫동안 닦아온 전투기술을 사용할 여유도 없었다.

준비하고 훈련하고, 슈퍼컴퓨터까지 동원해서 설계를 해도 현장은 예측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복잡하고, 돌발변수로 가득 차 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법과 제도와 양심만 있으면, 정의로운 처벌만 강화하면 세상의 모든 부조리가 쉽게 사라질 것이라는 성급한 생각이 활보한다. 세상의 부조리는 아직도 수도 없이 많지만 인간 세상의 다양성에도 늘 마음을 열어 놓아야 한다. 그것이 진짜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세상이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