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로드중
조지 허버트 워커(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밤(현지시간) 텍사스주 휴스턴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부시 전 대통령은 비록 ‘먼 길’을 떠났지만 그에 얽힌 일화는 여전히 그가 살던 이곳에 길이 남아있을 것이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게는 평생 가슴 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아픔이 있었다. 4살 때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딸 로빈이다. 로빈은 1949년생으로 아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보다 3살 아래였다.
금발머리에 얌전한 아이였던 로빈은 평소에 기운이 없었고, 병원에서 백혈병 진단을 받은 뒤 7개월만에 세상을 떠났다.
광고 로드중
다른 동료 경호원들도 함께 삭발을 했다. 당시 아기를 안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의 삭발한 사진은 한국에서도 소개가 됐었다.
아버지 부시는 노년이 되면서 먼저 간 딸을 더욱 더 그리워했고, 죽게 되면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사람이 딸 로빈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제 그는 그토록 그리워했던 딸을 만나게 됐다. 딸 로빈은 지난 4월 엄마 바버라부터 만났다.
◆부시 전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이 국교를 맺기 5년 전인 1974년 중국 베이징의 연락사무소장에 임명됐다.
수교 이전이었기에 연락사무소는 대사관의 전단계이며 부시 전 대통령은 특사 역할을 했다. 미국과 중국은 1979년 1월에 정식 수교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베이징에서 1년간 근무하면서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고 중국의 시골을 여행했다. 당시 중국은 ‘죽(竹)의 장막’에 가려진 나라로 불리던 시절이었기에 중국에는 서양인이 거의 없었다.
광고 로드중
부시 전 대통령은 2008년 출간된 일기에서 자전거를 타고 중국 시골을 여행했던 이야기를 포함해 중국에서의 값진 경험에 대해 상세히 얘기했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은 2016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내에서 아들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와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경선을 벌일 때 자주 괴로워했다. 치열했던 경선 과정에서 아들이 심한 공격을 받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자신도 험한 꼴 다 겪으며 대통령까지 했으면서도 아들이 곤경에 처하는 것을 볼 때에는 평범한 아버지였을 뿐이다. 아들 젭 부시는 결국 트럼프 후보에 밀렸고, 공화당의 최종 후보가 된 트럼프는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꺾고 대통령이 됐다.
아버지 부시는 아들을 공격해댄 트럼프 후보에 앙금이 남아 대선에서 클린턴에 투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과 아들 부시 전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 이후 곧바로 축하전화를 했다.
광고 로드중
부시 전 대통령은 1990년부터 에어포스 원의 기내식에서 브로콜리를 빼도록 했다. 어렸을 때부터 싫어했다는 다소 황당한 이유였다. 그는 그해 기자회견에서도 브로콜리를 먹지 않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부시 전 대통령은 타자기를 쓰지 않고, 늘 펜으로 글을 썼다. 보좌진에게 보내는 메모든,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든 언제나 손글씨를 고집했다.
【로스앤젤레스=뉴시스】